지난 3일이었다. 눈이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 오더니 30시간이 지난 자정부터 다시 내리고 급기야 폭설(暴雪)로 변하여 엄청난 눈이 온 천지를 뒤덮었다.
새벽 6시부터 집 앞 눈을 온 힘을 다해 말끔이 치우고 남은 힘으로 악조건의 환경에 달리기 도전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미 대륙 일주를 하려면 1년을 달려야 한다. 봄 가을의 적정 기온도 있지만 무더운 여름 눈 보라 치는 겨울 등 사계절을 만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극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비슷한 환경에서 훈련하여 대처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오늘이 눈, 진눈깨비, 비, 바람 등 최악의 환경이 나에게 주어진 날씨를 활용하라는 기회인 듯 했다.
서바이벌 도전 정신으로 환경에 대비한 저체온 방지와 체력 저하 방지를 위해 젤도 1개를 주머니에 넣고 또 자연 상태를 사진기에 담기 위해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대로변은 제설 작업 차가 분주히 움직였고, 주택가에는 무거운 눈을 치우느라 두툼한 옷을 입고 분주히 삽질하는 모습이 한겨울 진풍경이다.
질퍽거리는 도로를 달리다가 인도로 들어서면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어 다시 도로로 나오면 지나가던 차량이 눈 물을 튕겨 온 몸을 적셔 준다.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Fort Lee Road 긴 언덕을 넘어서니 비옷 속의 티셔츠는 땀으로 촉촉히 젖어오고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오고 입김은 눈앞을 가렸다. 상가인 Main Street 의 점포 앞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눈이 고객의 입구를 막고 있어 텅 빈 가게 주인은 울상 짓고 지키고 서 있었다.
뒤따라오던 제설차(除雪車)가 나를 앞질러 눈을 치워 가길래 그 뒤를 따라 달렸다. 드디어 허드슨 강변에 도착했다.
굳게 닫혀있는 게이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 갔다. 확 트인 강 건너 맨하탄 건물은 뿌옇게 내리는 눈 때문에 보이지 않았고, 길은 조지 워싱턴 다리 지킴이들의 차량 통행을 위해 다리 밑에 가는 첫 서클까지만 눈이 치워져 있었다.
최악의 폭설을 뚫고 달리다..美대륙 일주 워밍업
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며 바람까지 불어, 흐르던 땀이 주춤하던 틈을 타고 몸이 싸늘하게 식어 오싹하는 느낌이 들었다.
2008년도 Wasatch Front 100M(마일) Endurance 대회 때가 떠오른다. 한 밤중에 길을 잃어 8000 Ft(2,430m) 산속에서 반바지에 민소매 상의와 손에 든 물 한 통 그리고 헤드라이트에 의존하며 깊은 산속을 헤매다 곰도 만나기도 했다. 엄습해 오는 추위와 고갈(枯渴) 되는 체력에 더욱 저 체온 상태로 몰아가 두려웠다.
그때 겨우 찾아 내려온 도로에서 공사장 트랙터 바퀴에 기대어 바람을 피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떨면서 지나가는 차량을 기다렸던가? 내 생애 가장 길고도 긴 추위와의 전쟁이었다. 그때를 떠 올리며 추위에 지면 저체온 상태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발목까지 빠지는 눈 위를 달리려 노력했다.
발이 푹푹 빠지며 힘이 열 배 들고 눈에 걸려 넘어졌지만 몸에서 열이 났다. 젤을 먹어 에너지를 보충하고 뛰다 걷다 하면서 내가 지나온 발자국을 뒤돌아 본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 두 발자국과 사슴, 노루들의 발자국 그리고 바람에 못 이겨 떨어진 나무 가지뿐 이었다.
어기적 거리며 달려온 1.5마일(2.4km)은 산, 강물, 눈, 검은 구름들이 어우러져 있는 원초적인 자연의 풍경이다. 이런 자연을 음미(吟味)하고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을 가지려면 도전정신 속에 고통과 역경을 감수(甘受)해야 된다.
Englewood Picnic Area (Exit 1)의 눈 덮인 주차장과 강물에 떠도는 얼음덩이를 뒤로하고 가파른 언덕을 헐떡이며 올라와 강물을 내려다 보았다.
저 대자연의 장관(壯觀)을 뇌리에 되 새기고 문명이 만들어 놓은 Hudson Terrace의 아스팔트 길 위를 마구 달리며 일으키는 물보라를 보며 뒤 따라 집으로 향했다.
진눈깨비가 비로 바뀌어 비옷에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왠지 계절에 맞지 않는 듯 기분 좋게 들리지 않는다.
지나가던 중형 트럭이 고여있던 눈 물을 튀기는 바람에 흠뻑 뒤집어 썼다.
“사람을 보았으면 좀 천천히 달리지!” 하고 혼자서 투덜거리고 튀긴 물방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분을 전환하고 달렸다.
Main Street에서 박재순님이 운영하는 가또 제과점에 들러 따끈한 커피를 목으로 넘기니 몸이 확 풀리는 듯 했다. “한잔의 커피 감사 합니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 하는 완주의 기대감이 있었으나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짝 깔려있는 눈과 얼음 위를 조심스레 달렸다.
인도의 양 옆에 쌓여있는 눈 높이는 허리 위까지 올라왔으며 건널목에는 녹아있는 눈 물이 고여 있어 텀벙 발이 빠져 운동화를 적시고 말았다.
Broad Ave를 지나 집에 도착하니 1시간 20분! 2시간 20분 동안 악조건의 날씨 속에서 헤매고 달렸다. “역경과 장애물은 나를 그 만큼 성장과 개혁 시키고 도전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