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Jersey 편(15-3)
Day: 93, 오늘 달린 거리: 20 Mile, 누계: 3,079.50 Mile
날씨 맑음, 온도: 62~87 F
거리: 20 M, 시간:4시간 (시간: 4시30분~ 8시30분)
구간: US 1 (Israel Memorial Park) ~ Woodbridge ~ Rahway ~
Linden ~
Elizabeth ~ NJ 21~ US 1~ Harrison Ave ~ Newark Turnpike
(Newark)
어제 밤은 집에서 편안히 숙면답게 잠을 자고 정확히 3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였고, 3시30분에
유세형, 이덕재님이 집으로 오셨다,
오늘과 내일은 권혜순님이 보호차량을 운전하고,
그 동안 고생한 아내는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 25일 유엔 본부 앞에 함께 골인 하기로 했다,
이제 모든 일정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으나, 최후의
마지막까지 긴장은 계속 되야 한다, 만약에 정신력이 해이해 진다면 내 몸은 와르르 무너져 그자리 쓰러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유엔 본부만 생각 하기로 했다, 나는 Beth Israel Memorial Park앞에 정신을 재 무장하고, 무사를
기원하며 출발했다 1 마일을 넘자 Rahway Township 이였다, 이 마을은 Raritan 강을 중심으로 1664년부터 정착하기 시작 했으며 이름은 부족장 Rahwack 이름을
따서 지었다 1777년 독립 전쟁에서 승리의 발판 되었고, 1791년
마을이 설립 되었다 특히 전에는 교도소 이름이 Rahway 교도소였다,
그러나 1988년도 주민의 요청에 따라 “동부
뉴저지 교도소”로 바꾸었고, 1987년도 제작한 Sylvester Stallone 출연의 “Lock Up”, George
Clooney 출연의 “Ocean’s Eleven”영화는 유명하다 날이 밝아오면서 차량이
많아져 갔다, 9 마일을 달려 왔을 때 Elizabeth City 초입
이였다, 이 도시는 1665년 설립 되었으며 이름은 Elizabeth 여왕의 이름을 사용 하였고, 뉴저지 첫 번째 수도였다,
도시를 통과 하면서 많은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주고, 출근하는 사람들과 악수도 하며 “Almost Done!”하니 모두
경아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듯 했다, 내가 흥분 하고 있는 것 같아 자제했다, 흥분하면 이성을 잃는다 그러면 사고의 위험이 따른다,
기쁘지만 참아라! 햇빛이 내 몸을
태우며 불덩이처럼 뜨거워져 갔다, 이덕재, 유세형님은 번갈아
뒤따라 오며 물을 뿌려 주며 열을 식혀 주었고, 차량을 통제하여 내가 편히 달릴 수 있도록 하여 주었으며, 힘들어 할 때는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약 4 마일 더 달려오니 뉴저지에서
가장 큰 도시 Newark에 도착 시내를 통과 해야 했다, 이
도시는 1666년 케네디컷 뉴헤이븐 지배자인 청교도 Robert
Treat에 의해 발견 되였고,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산업이 급속히 발달 하였다, 인구도 급속히 팽창 하였으면서 다민족 도시가 되였다,1967년 “Newark Riots”(뉴왁 폭동)은 유명하다, 지역은 뉴왁 국제공항,
해운, 철도산업 등 교통의 중심지며 Rutgers 대학의
법대, 치대, 의대 등이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Branch Brook Park에는 43,000그루의 벚나무가 있어 벚꽃 관광이 유명하다, NJ 21번
도로를 따라 시내를 통과 하고는 헤어져 Harrison Ave를 통해
Passaic River Bridge 건널 때 길이 복잡 했으나 이덕재님의 안내로 무사히 넘어 Harrison
Township에 도착, 더위를 식히고 Harrison
Turn Pike 가 시작되는 20 마일 지점에서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다, 내일은 내가 사는 옆 동네까지 온다 모래는 25일 유엔 본부 앞에
도착할 예정 이였다, 하루를 편하게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아내가 복통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우선 현철수 박사에게 전화하고 달려
갔다, 금방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아파했다, 엠브런스을
타고 다시 Holy Name 병원으로 직행 응급실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스트레스성 위장 장애”라며 위가 부어있어 안정을 취해야 하므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을 시키고 나는 너무 황당하고 불안하여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만약에 잘 못 된다면 너무 고생시키면서 미 대륙 횡단을 진행시킨 결과의 평가를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인가? 아파하는 아내를 보는 내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코에 산소 호흡기를 꼽고 있는 모습이 칼로 내 심장을 찌르는 기분 이였다, 진정 되는 것 같아 병원을 나와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고 울부짖었다 ”내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아내의 병을 치유 하여 주십시요” “ 여기까지 오면서 받은 고통과 고난이 아직도
모자랍니까?”“더 심한 고통과 고난을 주신다고 해도 저는 받겠습니다”
“제 인생은 고통의 연속 이였으니깐요” 원망도 하고 슬퍼도 했지만 모두가 내가 겪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병실로 들어 갔을 때 아내는 완주를 해야 한다며 자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돌아 나와 93일 동안 어떠한 난관에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흘렸다, 부귀영화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데, 무모한 일을 하지 않았나 돌이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