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미주한인 강명구(58) 씨가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결지었다. 강명구씨는 5일 낮 12시30분 맨해튼 45가 유엔본부 앞에 도착, 125일간 3150마일(약 5040㎞)의 대장정을 끝냈다. 캠핑장비 등을 실은 50kg 무게의 특수유모차를 밀면서 왔기에 두배는 더 힘들었을 극한의 마라톤이었다. 위험한 고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 문제들이 해결돼 "대자연의 정령이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강명구씨가 도착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5.06.05.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2015-06-06
5일 뉴욕 유엔본부 골인…50kg짐차 밀며 125일간 5040km 대장정 마쳐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보통사람이 일군 위대한 승리의 드라마.
미주한인 강명구(58) 씨가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결지었다. 강명구씨는 5일 낮 12시30분 맨해튼 45가 유엔본부 앞에 도착, 기나긴 마라톤의 여정을 끝냈다. 지난 2월1일 LA 산타모니카 해변을 출발한지 어언 125일의 대장정.
조력자 없이 캠핑장비와 옷가지, 식량을 실은 50kg 무게의 특수유모차를 밀면서 왔기에 두배는 더 힘들었을 극한의 마라톤이었다. 총 14개주를 거치면서 위험한 고비도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신기하리만큼 문제들이 해결되곤 했다. "마치 대자연의 정령이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대부분의 날들을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며 달렸지만 마지막 며칠간은 마라톤동호인들이 합류해 '우정의 달리기'가 되었다. 특히 2010년 한인최초이자 아시안최고령(만65세) 대륙횡단마라톤에 성공한 권이주 전미주달리기클럽회장은 중간지점인 테네시와 워싱턴DC 구간 등을 함께 달리고 마지막 사흘을 함께 하는 등 세차례 동반주를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강명구씨와 우정의 달림이들은 이날 아침 뉴오버펙파크를 출발, 조지워싱턴 브리지를 건너 맨해튼에 진입, 센트럴파크와 타임스스퀘어 등 중요 포인트를 거쳐 많은 뉴요커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권이주 회장은 "내가 처음 대륙횡단 마라톤을 했을 때는 3-4명의 지원팀이 숙식 등 일정을 책임지고 차량 두 대가 앞뒤로 보호를 해주어 달리기만 열심히 하면 됐었다. 그러나 강명구씨는 온전히 자기 힘으로 짐차를 밀면서 여기까지 왔다. 정말 대단한 개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간의 험난한 여정을 말해주듯 강인한 구릿빛 피부에 덥수룩한 수염의 강명구씨는 "돌이켜보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라고 겸손해 하면서 "다만 나같은 50대 중년의 평범한 사람도 대륙횡단 마라톤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골인지점엔 레이스 내내 마음졸인 어머니 박보배(79) 여사가 나와 있었다. 넉달여만에 재회한 아들을 보고 한동안 눈시울을 붉힌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했다. 전화로 목소리만 듣다가 이렇게 만나니 너무나 좋다"고 말을 채 잇지 못했다.
강명구씨는 어머니를 힘껏 끌어안고나서 "가장 그리운 것은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레이스 내내 남북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배너를 짐차에 달고 뛴 그는 "아주 막연한 꿈이지만 언젠가는 파리부터 부산까지 유라시아 철도길을 따라 나홀로마라톤을 하고 싶다. 중국과 압록강을 거쳐 우리의 북녘 산하를 지나서 부산에 가는 소망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다음은 강명구씨와의 일문일답.
- 125일간의 대장정을 마친 소회는
"뉴욕이 가까워올수록 도리어 차분해졌다. 몸안에서 자장이 증폭하는 것 같은 건 있었지만 희열감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만 큰 숙제를 해결한 듯 한건 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일생에 한번 할까말까 한 대륙횡단 레이스를 한 것에 만족한다."
- 권이주회장을 포함,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만류했는데
"솔직히 나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웃음) 사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전문적인 훈련을 한적도 없는 보통사람 아닌가. 완주를 목표로 하긴 했지만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완주에 집착했다면 도리어 힘들었을거다. 사막을 지날때도 중요한 지점 하나만 정해놓고 하루치 걱정만 했다. 만일 일주일치 계획을 잡아서 했다면 머리 복잡해서 안됐을거다."
- 가장 힘들었던 때는
"유카밸리를 지나 모하비 사막으로 접어들 때가 가장 힘들었고 위험했다. GPS 배터리도 방전되고 길을 잃고 하루 종일 해맸다. 밤에 코요테같은 짐승과 맞부딛치기도 했다. 사막에서 야영하며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처음 눈물을 흘렸다. 특히 모하비사막의 도로 슈퍼바이저 리차드씨는 비상식량과 차단된 길을 알려주는 등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막 한가운데서 큰 위기를 만났을 것이다. 모하비 사막을 통과하는동안 리차드씨는 내게 낙타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정말 신기한 것은 125일간 한번도 나쁜 날씨를 겪지 않었다는 사실이다. 록키산맥에서 눈보라를 만났을 때, 텍사스에서 엄청난 토네이도가 불어 닥쳤을 때 모텔에서 밤을 지낼 때였다. 어떤 위험이 닥칠 때마다 대자연의 정령(精靈)들이 나의 미대륙횡단 마라톤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꼭 간절히 필요할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그렇다."
- 중간에 부상도 있었는데 그때 포기하고 싶지 않았나?
"예정구간의 딱 절반인 아칸소주의 포트스미스를 통과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정강이 뼈를 감싸는 근육이 삐끗했다. 순간적으로 공든탑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주간은 전혀 뛸 수가 없는 부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포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 가장 두려웠지만 며칠 쉬고 매일 정규마라톤 거리인 25마일 이상을 절룩이며 걸었다. 사실 힘들었다. 뛰지를 못하니까 하루 구간을 소화하려면 아침 6시에 출발해 밤 9시까지 이동해야 했다. 녹초가 되어 뻗었다가 다음날 새벽에 다시 걷고 하는 것을 3주 정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사라지더라. 정말 신비롭게도 자연치유가 된거다. 몸이 허락하는 만큼 뛰다보니 쭉쭉 나가게 됐다."
- 뛰면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나
"특수유모차에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배너를 달고 뛴 것처럼럼 대륙횡단마라톤을 통해 전하고 싶은 첫 번째 메시지는 통일의 염원을 나누고 합치고 싶은 것이다. 둘째는 건강이다. 우리는 100세를 사는 첫 세대가 될거다. 나도 아직 40년이상 더 살거다. 아프면서 더 사는게 아니라 건강하면서 살아야 한다. 뭐든 다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 앞으로 계획은
"지난 4개월간 뛰면서 좋았던건 '스트레스 제로'의 시간을 보냈다는거다. 오늘까지는 즐기고 싶다. 내일부터 뭘 할지 고민하겠다.(웃음) 성공을 위한 삶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도움을 주고 나눌 수 있는 일을 찾겠다."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보통사람이 일군 위대한 승리의 드라마.
미주한인 강명구(58) 씨가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결지었다. 강명구씨는 5일 낮 12시30분 맨해튼 45가 유엔본부 앞에 도착, 기나긴 마라톤의 여정을 끝냈다. 지난 2월1일 LA 산타모니카 해변을 출발한지 어언 125일의 대장정.
조력자 없이 캠핑장비와 옷가지, 식량을 실은 50kg 무게의 특수유모차를 밀면서 왔기에 두배는 더 힘들었을 극한의 마라톤이었다. 총 14개주를 거치면서 위험한 고비도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신기하리만큼 문제들이 해결되곤 했다. "마치 대자연의 정령이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미주한인 강명구(58) 씨가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결지었다. 강명구씨는 5일 낮 12시30분 맨해튼 45가 유엔본부 앞에 도착, 125일간 3150마일(약 5040㎞)의 대장정을 끝냈다. 캠핑장비 등을 실은 50kg 무게의 특수유모차를 밀면서 왔기에 두배는 더 힘들었을 극한의 마라톤이었다. 위험한 고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 문제들이 해결돼 "대자연의 정령이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레이스엔 2010년 미대륙횡단마라톤의 주인공 권이주(70) 회장을 비롯한 마라톤동호인들이 합류해 대형 태극기 등을 휘날리며 맨해튼 거리를 질주했다. 2015.06.05.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2015-06-06
대부분의 날들을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며 달렸지만 마지막 며칠간은 마라톤동호인들이 합류해 '우정의 달리기'가 되었다. 특히 2010년 한인최초이자 아시안최고령(만65세) 대륙횡단마라톤에 성공한 권이주 전미주달리기클럽회장은 중간지점인 테네시와 워싱턴DC 구간 등을 함께 달리고 마지막 사흘을 함께 하는 등 세차례 동반주를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강명구씨와 우정의 달림이들은 이날 아침 뉴오버펙파크를 출발, 조지워싱턴 브리지를 건너 맨해튼에 진입, 센트럴파크와 타임스스퀘어 등 중요 포인트를 거쳐 많은 뉴요커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권이주 회장은 "내가 처음 대륙횡단 마라톤을 했을 때는 3-4명의 지원팀이 숙식 등 일정을 책임지고 차량 두 대가 앞뒤로 보호를 해주어 달리기만 열심히 하면 됐었다. 그러나 강명구씨는 온전히 자기 힘으로 짐차를 밀면서 여기까지 왔다. 정말 대단한 개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미주한인 강명구(58) 씨가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결지었다. 강명구씨는 5일 낮 12시30분 맨해튼 45가 유엔본부 앞에 도착, 125일간 3150마일(약 5040㎞)의 대장정을 끝냈다. 캠핑장비 등을 실은 50kg 무게의 특수유모차를 밀면서 왔기에 두배는 더 힘들었을 극한의 마라톤이었다. 위험한 고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 문제들이 해결돼 "대자연의 정령이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레이스엔 2010년 미대륙횡단마라톤의 주인공 권이주(70) 회장을 비롯한 마라톤동호인들이 합류해 대형 태극기 등을 휘날리며 맨해튼 거리를 질주했다. 유엔본부를 배경으로 강명구(오른쪽)씨와 권이주회장이 포즈를 취했다. 2015.06.05.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2015-06-06
그간의 험난한 여정을 말해주듯 강인한 구릿빛 피부에 덥수룩한 수염의 강명구씨는 "돌이켜보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라고 겸손해 하면서 "다만 나같은 50대 중년의 평범한 사람도 대륙횡단 마라톤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골인지점엔 레이스 내내 마음졸인 어머니 박보배(79) 여사가 나와 있었다. 넉달여만에 재회한 아들을 보고 한동안 눈시울을 붉힌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했다. 전화로 목소리만 듣다가 이렇게 만나니 너무나 좋다"고 말을 채 잇지 못했다.
강명구씨는 어머니를 힘껏 끌어안고나서 "가장 그리운 것은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미주한인 강명구(58) 씨가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결지었다. 강명구씨는 5일 낮 12시30분 맨해튼 45가 유엔본부 앞에 도착, 125일간 3150마일(약 5040㎞)의 대장정을 끝냈다. 캠핑장비 등을 실은 50kg 무게의 특수유모차를 밀면서 왔기에 두배는 더 힘들었을 극한의 마라톤이었다. 위험한 고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 문제들이 해결돼 "대자연의 정령이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도착직후 강명구씨가 어머니 박보배(79)여사와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2015.06.05.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2015-06-06
레이스 내내 남북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배너를 짐차에 달고 뛴 그는 "아주 막연한 꿈이지만 언젠가는 파리부터 부산까지 유라시아 철도길을 따라 나홀로마라톤을 하고 싶다. 중국과 압록강을 거쳐 우리의 북녘 산하를 지나서 부산에 가는 소망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다음은 강명구씨와의 일문일답.
- 125일간의 대장정을 마친 소회는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미주한인 강명구(58) 씨가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결지었다. 강명구씨는 5일 낮 12시30분 맨해튼 45가 유엔본부 앞에 도착, 125일간 3150마일(약 5040㎞)의 대장정을 끝냈다. 캠핑장비 등을 실은 50kg 무게의 특수유모차를 밀면서 왔기에 두배는 더 힘들었을 극한의 마라톤이었다. 위험한 고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 문제들이 해결돼 "대자연의 정령이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레이스엔 2010년 미대륙횡단마라톤의 주인공 권이주(70) 회장을 비롯한 마라톤동호인들이 합류해 대형 태극기 등을 휘날리며 맨해튼 거리를 질주했다. 강명구씨는 언젠가 파리에서 북한을 거쳐 부산으로 골인하는 유라시아 마라톤의 꿈도 꾸고 있다고 말했다. 2015.06.05.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2015-06-06
"뉴욕이 가까워올수록 도리어 차분해졌다. 몸안에서 자장이 증폭하는 것 같은 건 있었지만 희열감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만 큰 숙제를 해결한 듯 한건 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일생에 한번 할까말까 한 대륙횡단 레이스를 한 것에 만족한다."
- 권이주회장을 포함,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만류했는데
"솔직히 나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웃음) 사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전문적인 훈련을 한적도 없는 보통사람 아닌가. 완주를 목표로 하긴 했지만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완주에 집착했다면 도리어 힘들었을거다. 사막을 지날때도 중요한 지점 하나만 정해놓고 하루치 걱정만 했다. 만일 일주일치 계획을 잡아서 했다면 머리 복잡해서 안됐을거다."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미주한인 강명구(58) 씨가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결지었다. 강명구씨는 5일 낮 12시30분 맨해튼 45가 유엔본부 앞에 도착, 125일간 3150마일(약 5040㎞)의 대장정을 끝냈다. 캠핑장비 등을 실은 50kg 무게의 특수유모차를 밀면서 왔기에 두배는 더 힘들었을 극한의 마라톤이었다. 위험한 고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 문제들이 해결돼 "대자연의 정령이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레이스엔 2010년 미대륙횡단마라톤의 주인공 권이주(70) 회장을 비롯한 마라톤동호인들이 합류해 대형 태극기 등을 휘날리며 맨해튼 거리를 질주했다. 조지워싱턴브리지를 건너 맨해튼으로 향하는 강명구씨(왼쪽)와 동반주를 한 동호인들. 2015.06.05. <사진=권이주씨/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2015-06-06
- 가장 힘들었던 때는
"유카밸리를 지나 모하비 사막으로 접어들 때가 가장 힘들었고 위험했다. GPS 배터리도 방전되고 길을 잃고 하루 종일 해맸다. 밤에 코요테같은 짐승과 맞부딛치기도 했다. 사막에서 야영하며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처음 눈물을 흘렸다. 특히 모하비사막의 도로 슈퍼바이저 리차드씨는 비상식량과 차단된 길을 알려주는 등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막 한가운데서 큰 위기를 만났을 것이다. 모하비 사막을 통과하는동안 리차드씨는 내게 낙타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정말 신기한 것은 125일간 한번도 나쁜 날씨를 겪지 않었다는 사실이다. 록키산맥에서 눈보라를 만났을 때, 텍사스에서 엄청난 토네이도가 불어 닥쳤을 때 모텔에서 밤을 지낼 때였다. 어떤 위험이 닥칠 때마다 대자연의 정령(精靈)들이 나의 미대륙횡단 마라톤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꼭 간절히 필요할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그렇다."
- 중간에 부상도 있었는데 그때 포기하고 싶지 않았나?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미주한인 강명구(58) 씨가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미대륙횡단마라톤을 완결지었다. 강명구씨는 5일 낮 12시30분 맨해튼 45가 유엔본부 앞에 도착, 125일간 3150마일(약 5040㎞)의 대장정을 끝냈다. 캠핑장비 등을 실은 50kg 무게의 특수유모차를 밀면서 왔기에 두배는 더 힘들었을 극한의 마라톤이었다. 위험한 고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 문제들이 해결돼 "대자연의 정령이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레이스엔 2010년 미대륙횡단마라톤의 주인공 권이주(70) 회장을 비롯한 마라톤동호인들이 합류해 대형 태극기 등을 휘날리며 맨해튼 거리를 질주했다. 2015.06.05.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2015-06-06
"예정구간의 딱 절반인 아칸소주의 포트스미스를 통과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정강이 뼈를 감싸는 근육이 삐끗했다. 순간적으로 공든탑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주간은 전혀 뛸 수가 없는 부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포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 가장 두려웠지만 며칠 쉬고 매일 정규마라톤 거리인 25마일 이상을 절룩이며 걸었다. 사실 힘들었다. 뛰지를 못하니까 하루 구간을 소화하려면 아침 6시에 출발해 밤 9시까지 이동해야 했다. 녹초가 되어 뻗었다가 다음날 새벽에 다시 걷고 하는 것을 3주 정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사라지더라. 정말 신비롭게도 자연치유가 된거다. 몸이 허락하는 만큼 뛰다보니 쭉쭉 나가게 됐다."
- 뛰면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나
"특수유모차에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배너를 달고 뛴 것처럼럼 대륙횡단마라톤을 통해 전하고 싶은 첫 번째 메시지는 통일의 염원을 나누고 합치고 싶은 것이다. 둘째는 건강이다. 우리는 100세를 사는 첫 세대가 될거다. 나도 아직 40년이상 더 살거다. 아프면서 더 사는게 아니라 건강하면서 살아야 한다. 뭐든 다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 앞으로 계획은
"지난 4개월간 뛰면서 좋았던건 '스트레스 제로'의 시간을 보냈다는거다. 오늘까지는 즐기고 싶다. 내일부터 뭘 할지 고민하겠다.(웃음) 성공을 위한 삶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도움을 주고 나눌 수 있는 일을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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