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kwon&wr_id=56 참조
먼 길을 고독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기와 대화를 하며 거대한 미 대륙을 건너 북상 중인 마지막 코스를 함께 하기 위해 집을 나섯다.
차를 팰리사이드 팍에 주차하고 유세형님의 안내로 숙박하고 있는 모텔을 찾아 갔다.
3번째의 만남의 우정달리기! 그를 보는 순간 짧은 기간인데 많이 여위었고 체력이 많이 소진(消盡)되어 있었으나 최후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의지의 두 눈동자 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내일과 모레 유엔 본부 앞까지의 이동 경로를 점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6월4일 오늘의 코스는 1650 US 22 Springfield 를 출발, 차량이 많고 위험한 US 22번 도로를 새벽에 통과 하고는 주택가의 꼬불꼬불한 길 모두 안내차량 뒤를 따라 가며 Union City, Newark, Rutherford, Little Ferry를 거처 Overpack County Park 에 12시30분 도착 환영 행사를 마치는 22마일 달리기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버릴 것은 버리고 짐을 챙겨 유모차에 싣고 길을 안내 하여 주실 유세형 님과 에드워드 박님이 오셔서 5시15분에 출발했다.
US 22번 도로는 새벽인데도 많은 차량이 질주 하여 뒤에서는 차량이 보호하고 앞에서는 자전거로 안내하며 요리조리 빠져 나와 안전한 주택가를 달렸다.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있어 천천히 무리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달리는 중도에 한영석님, 김동수님,노 세실리아님께서 오셔서 합류 힘을 실어 주셨다.
오는 도중 이남희님 합기도 도장에 들러 환영을 받고 오버팩 팍 앞의 호텔에 여장을 풀고 행사장으로 갔다. 팰리사이드 한인 회장, 시의회 의장 등 각 단체장과 김용진 님, 안정환 님을 비롯 몇몇 동료들과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환영식을 마치고 오랜만에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지나온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할 이야기 거리가 얼마나 많겠는가?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 보따리를 잠시 그치고 내일 마지막 달리기를 위해 호텔로 와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 식사는 뉴저지의 일요 달리기 모임의 김유남 님을 비롯 10여명이 한식 뷔페에 초대 되어 4개월여 만에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드디어 대장정의 마무리 날인 6월5일 아침이 밝았다. 한영석 님께서 아침 식사까지 준비하는 완벽한 배려에 우리는 에너지를 충만 시키고 함께 동반 하려는 이병환 님을 비롯, 10여명과 뉴저지 동료 10여명 등이 함께 공원을 출발 조지 워싱턴 다리로 향해 8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2010년 내가 달리던 그 때의 그 날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한인 최초 미 대륙 횡단 울트라 마라톤 이란 절대 절명의 사명을 갖고 한 발짝도 걷지 않고 런너로서 달리기에만 전념 했지만 강명구님은 나 홀로 누구의 도움 없이 오직 혼자의 힘으로 유모차에 침구와 식사 도구를 싣고 밀며 끊임 없이 목적지를 향해 왔다. 미 대륙 횡단은 원칙이 없고 타입도, 코스도 모두 다르다. 마라톤을 완주하면 모두에게 메달을 주 듯 미 대륙 횡단자 모두 각기 다르기 때문에 기준이 없는 고통의 극복자(克服者)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리를 건너 뉴욕 맨하탄에 입성, River Side Dr를 따라가다 100 St에서 가장 복잡한 Broadway를 거쳐 97 St에서는 센트럴 팍 주로를 달렸다. 그 동안 갈고 닦은 훈련장에 고마움을 표하고 7 Ave로 해서 42 St 타임스퀘어에 도착 만인에게 신고를 하고 유엔 본부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으며 결승 테이프를 끊고는 대 장정의 3번째 우정 달리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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