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 김치와 같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wr_id=29
아침 햇살이 떠오르면 잠자던 온 세상이 부시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분주해진다. 한 마리 새가 노래를 하면 다른 새들도 같이 노래를 불러댄다. 제일 부지런한 물고기가 수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면 또 다른 물고기도 수면을 박차고 솟아오르며 아침 기지개를 켠다. 어미 천둥오리가 부채살을 그리며 어디론가 가면 새끼 천둥오리도 쪼르르 따라나선다. 잠에서 깨어난 자연은 숲 속이고 물 속이고 분주한 소리가 들린다.
물도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산도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나는 어려서부터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집에서 사는 꿈을 꾸어왔다. 낙스빌은 도시 전체가 그렇다. 앞으로는 테네시 강이 흐르고 뒤로는 아팔라치안 산맥이 병풍(屛風)처럼 둘러있다. 특히 스모키 마운틴이라는 천혜의 아름다운 산을 이웃하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오밀조밀한 볼거리와 대자연이 만들어 놓은 장대한 경관(景觀)이 잘 조화를 이루어 천국의 옆동네에 온 기분이다.
미국에서 가장 꽃가루가 많이 날리는 곳, 봄이면 꽃가루 알러지로 고생을 하는 내게는 필시 가장 고통스러운 곳. 꽃가루 알러지로 홍역을 치를지라도 나 눈부신 햇살 아래 흐드러진 낙스빌의 꽃향기에 취해도 좋으리다. 이 특별한 해의 오월에!
너무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외롭지도, 너무 혼잡하지도 않고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인 내쉬빌이 바로 옆에 있어 적당히 떠들석한 곳이다. 싱그러운 오월의 푸르름이 햇살을 타고 달리며 확장된 온몸의 기공을 통해서 가슴으로 그대로 밀려든다.
나는 건망증이 심해서 방금 전의 일도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이상하게 남들은 기억도 없다는 유아기의 편린(片鱗)을 가지고 있다. 그 희미한 추억의 작은 조각 속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왕십리에도 한강이 흐르고 청계천이 흐르는 모습이 있다. 뒷산엔 숲도 있었다. 그 강과 개울은 순식간에 오염이 되고 산은 민둥산이 되어서 나의 어린시절은 우울했다. 어머니의 꽃 같은 모습도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 아름다운 낙스빌에 권이주씨가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셨다. 새벽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비행장에 가서 조지아의 아틀란타에서 내려서 다시 친구 분하고 같이 세시간 반을 운전을 해서 오셨다. 그는 한인으로는 최초로 5 년 전에 미대륙횡단 마라톤을95일 만에 완주했다. 그의 마라톤이 내게 영감(靈感)을 주고 도전정신을 자극하여 나도 이 험한 길을 나선 것이다. 그는 나보다 12살이 많은 띠동갑인데도 아직도 더 큰 도전을 꿈꾸고 있다. 세 달 남짓만에 보는 그를 나는 너무 반가워 힘껏 얼싸안았다.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우리는 길을 나서서 낙스빌의 서쪽에서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서 테네시 강을 다시 건넜다. 테네시 주를 지나면서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테네시 강을 벌써 네 번씩이나 건넜는데 그 중에서 네 번째 강이 제일 아름다웠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같이 달렸다. 아름다운 테네시 강변을 나이를 초월한 우정으로 함께 손수레를 밀며 달리니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온 몸이 휘휘 감는 오월의 진한 장미 향기와, 코 끝을 징하게 만드는 우정의 향기가 강물처럼 풍족하게 넘쳐흐른다. 앞으로 넘어갈 산이 높고 험할지라도 이제 나는 거뜬히 넘어 갈 힘을 얻었다. 마라톤은 김치와 같다. 땀으로 절이고 매꼼한 열정으로 양념을 하고 은근과 끈기로 발효가 되어야 제 맛이 난다. 우정도 그런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절이고 매꼼한 공감대로 양념으로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발효가 되어 제 맛이 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