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2일 월요일

후회 없는 훈련을 하자!

뉴 오버팩 팍에서
04/22/13, 월요일, 날씨 맑음, 온도: 41 F
 거리: 9.6 M, 시간: 1시간30분

달리기는 달릴 때는 힘들고 고통이 따르지만
끝내면 언제 힘 들었더냐? 내가 언제 뒤었지?
하고, 경기후에는 좀더 잘 달릴걸, 고통그러워도
좀 참았다면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을테데 하고
항상 후회한다.
인생도 지나고 나면 누구나 후회한다.
삶도, 달리기도 좀더 철저히 설계하고 훈련하여
보다 적은 후회를 하도록 하자!

2 M x 3 = 6 M
1.8 M x 왕복 = 3.6 M       계: 9.6 M

2013년 4월 21일 일요일

포코너 마라톤을 대비한 훈련!

허드슨 강변에서
04/21/13, 일요일, 날씨: 맑음, 온도:39 F,
거리: 16 M, 시간: 2시간

어제 Harley 가 왔다, 새벽에 화장실 사용을 끝내
주는라 늦게 허드슨 강변으로 가서, 5 M을 워밍업
으로 Edgewater까지 다녀오고 경찰서로는 최창용님과
함께 달려갔으나 경찰서 밑 Circle에서  도져히 올라
갈수 없다며 뒤돌아 가시고 나는 끝까지 올라 갔다
돌아올때는 혼자서 최선을 다했지만 52분37초가
소요되였다, 앞으로 포코너 마라톤 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 하자

Exit 1 ~ Edgewater ~ Exit 1 ~ 경찰서~ Exit 1= 16 M

2013년 4월 19일 금요일

옛 곳인 오버팩 팍에서!

오버팩 팍 에서
04/19/13, 금요일, 날씨: 흐림, 온도:60 F,
거리: 5 M, 시간: 1시간

날씨 탓인지 달리기 싫고, 몸이 천근 만근?
오랫만에 돌아보니 꽃도 피고, 건물공사는
완공 직전이 였다.
역시 옛 것이 더 정다워 보였고, 고향에 온
기분이였다. 그러나 몸이 풀리지 않아 2바퀴
만 돌고 집으로 향했다.
몸무게는 줄기 시작 130 파운드 이제 부터
몸 무게 줄이기 전쟁은 시작 도;었다.
일요일은 장거리를 달려 보련다.

1.25 x 2 = 2.5  M
1.25 x 왕복 = 2.5 M     계: 5M

2013년 4월 18일 목요일

축제의 마라톤이 아수라장으로!

안타까운 117회 보스턴 마라톤



통산 132번째 출전하는 이번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2002년에 첫 출전하고 미 대륙 횡단 하던 해인 2010년 등 올해까지 11번째의 레이스였다. 2005년과 2008년에는 태극기를 들고 달렸는데 올해 5년만에 태극기를 다시 거머쥐게 됐다.




태극기를 들고 달릴 때 연도의 많은 시민들이 “South Korea”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가끔 정확한 발음으로 “대~한민국”하고 불러 줄 때면 마치 기를 불어 넣어주는 듯 하여 힘이 불끈 솟구쳤다.






태극기를 처음 들고 뛴 마라톤은 2004년 New York City Marathon 이다. 믿거나말거나 같지만 그때만 해도 태극기를 일본 국기로 아는 미국인들이 있었다. 태극기를 보고 “Japan!" 하고 소리치면 뒤돌아서서 “Korea!” 하고 목청껏 정정해주던 기억이 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그 사이 180도 바뀐 상황이 실로 감개무량(感慨無量)이다.


기록을 의식해야 하는 마라톤에서 태극기를 들고 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태극기를 통해 국위를 선양(宣揚)하겠다는 마음과 연도의 시민들과 주위 런너들의 놀라운 반향(反響)이 늘 나를 즐겁게 한다.




보스턴 마라톤은 1897년 시작. 올해로 117회를 맞았다. 한국 선수로는 해방직후인 1947년 서윤복 선수가 첫 우승을 차지했고 1950년도에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1, 2, 3위를 모두 휩쓸었다.


1990년대 들어 10년 동안 계속 아프리카 선수가 우승하다가 2001년에 이봉주 선수가 2시간9분43초로 아프리카 선수들을 제치고 1위로 골인, 한국의 위상을 세워주며 보스턴 시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 대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령별 출전 속도 규정으로 출전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여겨진다


경기일인 15일 월요일에 맞춰 회원들과 함께 전날 컨벤션 센터에 도착, 배번을 찾고 탄수화물로 저녁 식사를 마쳤다. 다음날 달릴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긴장 상태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일어나 출발 장소로 이동했다.




대한민국을 비롯, LA와 조지아 애틀랜타 등 각지에서 온 한국인 런너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면서 출발선상에 섯다. 2만4천여명이라는 많은 인원때문에 10시와 10시20분, 10시40분으로 시차 간격을 두고 뛰게 했다. 나는 맨 뒤인 10시40분에 출발했다.


오른손에 태극기를, 왼손에 카메라를 들고 뛰려다가 너무 불편한듯 하여 카메라를 출발 직전 한 회원에게 건넸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기절초풍할 사건이 터졌으니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던게 아쉬웠다.




이 대회에 첫 출전하는 회원들과 멀고도 긴 대장정을 총성과 동시에 떠났다. 코스는 미 독립전쟁을 촉발시킨 ‘Tea 사건’이후 독립군이 보스턴을 향해 Hopkinton Town 을 출발, 현 Route 135 도로를 따라 진격해 간 Ashland Town Framingham, Natick Twon 을 따라간다.




유명한 Wellesley 의 여자 대학교 앞을 지나면 Half 가 되고, Newton 에 입성하면 Boston College 의 학생들이 Heartbreak 를 힘들게 올라가는 런너들에게 목청이 터져라 응원해 준다. 숨가쁘게 고개를 넘어 Brookline Town 을 지나면 Boston City 의 건물들이 보인다.


보스턴 마라톤은 New England Indipendence Patriot Day 로 4월 둘째주 토요일, 셋째주 일요일, 월요일 3일간 공휴일로 지정 각종 행사가 진행되며 그중 마지막 날 Big Event로 치러진다.




나는 동료들의 ‘페이스 메이커’로 4시간20분에 맞추어 달리는 일을 맡았다. 고사리같은 어린이들이 내미는 손에 하이파이브도 하고 태극기를 보고 “South Korea” 하면 흔들어 답례도 했다. 이따금 강남 스타일의 말춤 모습도 보여주면 모두가 환호하는 함성에 도취(陶醉)되곤 했다.


피니시 라인을 코 앞에 둔 40km 지검의 매트를 밟고 다리의 언덕을 넘어 직선의 도로를 달리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앞서 가던 런너들이 선 채로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돌아 언덕을 넘으면 결승 아취가 있는 대로가 나타나고 환호성 속에 결승 매트를 밟으면 생애 132회 마라톤에 완주에 성공하게 된다.


그런데 런너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앞에는 경찰이 서 있고 통제하니 황당한 일이었다. 주위 동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결승지점에서 2발의 폭탄이 터져 입구를 모두 폐쇄했다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사고냐? 고 물었더니 테러라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청천벽력(靑天霹靂)도 유분수지 테러가 발생하다니... 순수한 스포츠의 제전(祭典)을 불모로 어떤 미치광이들이 테러를 저지른단 말인가. 무자비한 테러범들의 행위에 아연실색할 따름이었다.




입고있던 팬티와 싱글레스 상의, 모자와 태극기만 들고 있던 나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 돼 있었다. 그러나 선 채로 대기하면서 점점 온도는 내려가고 찬 바람이 부는 바람에 오싹하며 추위가 온 몸을 휘감았다.


턱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추워서 고통받다가 주택가에서 사람들이 나와 집에 있는 비닐 쓰레기백을 나누어 주어 그것으로 몸을 감쌌다.


그 상황에서도 모두 침착하게 기다리며 주최측에서 안내하는 길을 따라갔다. 본부석 주변에 맡겨놓은 보관소에서 짐을 찾았다. 저 앞에 아련히 보이는 결승점 아취 주위는 어수선했고 경찰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리저리 널부러진 잔해(殘骸)들과 연기가 자욱하니 피어오르고 있었다. 폭탄 테러가 벌어진게 실감이 났다. 5분 정도만 일찍 뛰었다면 달리는 순간 폭탄이 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나 동료들이 다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다니 참담한 기분이었다.


어둠이 깔리는 보스턴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대절한 15인승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어릴적 겪은 6 25전쟁, 청년 시절에는 월남전에서 전쟁의 참혹한 상황을 경험한 나로서는 오늘의 현상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어떤 스포츠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평화로운 마라톤에 테러가 침투하다니! 우울한 심사때문이었을까. 돌아오는 내내 주변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에필로그>



다음날 대회조직위에서 이메일이 왔다. 마라톤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에게 완주 인증서를 준다는 것이다. 참가자중 약 7천명이 테러 때문에 레이스를 끝내지 못했다.


그러나 5km 단위로 모든 선수들의 기록이 체크됐기 때문에 선수마다 마지막 구간을 통과했을 때의 기록을 근거로 평균 시간을 계산해 공식기록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미국식 합리주의와 출전선수에 대한 깊은 배려가 느껴진다. 모쪼록 보스턴 시민들이 다시 희망을 갖고 내년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의 레이스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몸 무게줄이기 돌입!

뉴 오버팩 팍에서
04/18/13, 목요일, 날씨: 맑음, 온도: 58 F
거리: 7.6 M, 시간: 1시간 10분

현재 몸무게 132 파운드 1차목표 125 파운드
2차목표 120파운드 3차 목표 115 파운까지 간다
훈련을 강도 높게하여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 하자
오늘은 어제 11 마일 달렸지만 새벽 6시에 나아가
달리는데 아직 종아리 부상이 완전치 못하다

2 M x 2 = 4 M
1.8 M x 왕복 = 3.6 M      계: 7.6 M

2013년 4월 17일 수요일

현철수 박사와 동반주!

허드슨 강변에서
04/17/13. 수요일, 날씨: 맑음, 온도: 61 F
거리: 11 M, 시간: 2시간

보스톤 마라톤 대회를 마치고, 몸도 풀고,본격적
훈련의 기점으로 생각하고 오후 2시 허드슨 강변
으로 가서 현철수 박사와 달렸다
60F를 넘어 더위가 심할 것으로 예상 했으나 바람
이 불어 달리기좋았다. 그러나 높은 온도는 어랫
만에 땀이 온몸을 적셔주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본격적 훈련에 돌입하면서 몸무게
줄이기에 시동을 걸어야갰다, 현재 132 파운드, 우선
125파운드까지 내리도록 오전 오후 1일2회 달려 보자

Exit 1 ~ 경찰서 = 왕복 = 11 M

2013년 4월 16일 화요일

132번째 출전!

 
 

대회명: 118회 Boston Marathon
일시: 2013년4월15일, 일요일, 오전: 10시
장소: Boston MA
날씨: 맑음, 온도: 45~50 F,
시간: 40키로 통과=4시간10분 정도
내용: 0,홍효순 최헬렌, 최현호, 샤론양등과 동반주
          0, 태극기들고 전구간 달림,
          0, 결승지점 폭탄 터러 폭팔로 아수라장
         

2013년 4월 13일 토요일

김호성, 이덕재님과 10마일!

허드슨 강변에서
04/13/13, 토요일, 날씨: 구름, 온도: 44 F,
거리: 10 M, 시간: 1시간30분

보스톤 출전을 위한 마지막 달리기로 회원들과
함께 훈련했다,
이번에는 태극기를 들고 회원들의 페이스 메이커
로 달리려고 한다.
출전 신청을 하지 않아 출전 하지 않으려 했는데
회원들과 함께 달려 완주 해야 겠다.

Exit 1 ~ Edgewater = 2번 왕복 = 10 M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홍효선 이덕재님과 함께 10 마일!

허드슨 강변에서
04/11/13, 목요일, 날씨: 흐림, 온도: 58 F
거리: 10 M,  시간: 1시간 40분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공기를 마시며 보스톤
마라톤 출전 마지막 훈련으로 허드슨 강변을 함께
몸을 풀며 달렸다.
달림이들의 꿈의 전당인 보스톤 마라톤 대회도
이제 118회를 맞이하는 마라톤 역사를 갖는다.
10년을 줄기차게 달렸고, 이번에는 태극기를 들고
페이서로 즐겁게 달리고 와야겠다

Exit 1 ~ Edgewater = 2회 왕복 = 10 M

2013년 4월 10일 수요일

김호성님과 함께 달리기 !

허드슨 강변에서
04/10/13, 수요일, 날씨:맑음, 온도:61 F,
거리: 10 M,  시간: 1시간; 20분

김호성님과 함께 5마일을 달리고 오니 김형남,
김성유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제는 모두 잘들 달린다, 보스톤을 향한 열기가
이제 붙는 듯하다, 목표가 있으면 활기가 솟는법
올 여름 훈련 열기는 뜨거울 것 같다.

Exit 1 ~ Edgewater = 2번 왕복 = 10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