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출전, 빗속을 뚫고 달리다
www.newsroh.com 참조
뉴욕 시티 마라톤 대회는 내가 마라톤을 시작한 동기(動機)를 부여한 대회다. 2000년 2월 광고를 보고 나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물어보면서 나도 모르게 도전을 유도한 것 같다.
당뇨병 치료를 위해 4년간 맨손체조와 3~5마일 달리기를 하며 병이 완치됐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마라톤이었다. 세월의 흐름속에 어느 덧 이번이 182번째 마라톤이 되었다.
뉴욕 마라톤은 2003년 첫 출전 후 2011년 까지 매년 참가하다 4년 동안 공백(空白)이 있었고, 지난해 다시 참가해 올해가 11번째다. 앞으로 4년을 더 참가하면 15번으로 자동 출전권을 받게 된다. 올해는 아내와 함께 출전 하는 부부동반 대회이기도 했다.
또한 한국에서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정석근 감독과 건국 에이스 팀원 그리고 런너스 클럽 회원 등 선수 14명이 지난 2년간 퀄리파이를 하여 지난 2월 등록을 완료했다. 응원하는 4명을 포함, 총 18명이 뉴욕 거리를 누빈다.
동호인의 한사람으로서 이들과 7박8일 동안 안내도 하고 함께 하는 기회로 삼았다. 일행을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맞이하여 EXPO장에서 번호표를 찾았다. 토요일 휴식하고 일요일 새벽 5시30분에 출발 지점인 Staten Island 로 갔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불어 약간의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모든 회원들이 각자 시간대(Wave) 출발지점(Color, Corral)을 찾아 떠나고 나도 내 자리로 이동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참가자만 5만명이 넘는 대회가 질서정연(秩序整然)하게 운영되는 모습에 감탄했고 그 많은 봉사자들이 런너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보면 늘 감사한 생각이 든다
나는 Wave 3, 10시40분 출발, Blue에 Corral E, 아내는 Wave 3, Orange 에 Corral A다. 우리는 헤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출발했다.
Verrazano-Narrows Bridge를 건너 Bronx에 진입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New York City Marathon은 Fred Lebow와 Vine Chiappetta가 1970년도에 Central Park에서 127명이 참가해 55명이 완주하는 대회로 시작했고, 당시 등록비는 $1, 총 예산 &1,000 에 불과했다.
또한 최초로 여자 선수가 출전 했으나 아쉽게도 중도 포기했고, 현 코스인 5 Borough 경유는 1976년 출전자가 2090명 때부터였다. 이후 꾸준히 참가인원이 늘었다. 2012년엔 허리케인 Sandy로 인해 대회가 취소되기도 했고 2013년을 깃점으로 50,000명이 넘게 출전하면서 초대형 마라톤 대회가 되었다.
Brooklyn 4번가를 달리며 회원들도 만나고 기분 좋게 달렸다. 비가 내려 습도가 높은 것을 느꼈지만 대수롭게 않게 생각했다, 16 마일 지점인 Queens Borough Bridge를 거침없이 넘고 1St Ave 진입하면서 소변이 보고 싶었다. 17 마일 지점에서 화장실을 들렀는데 이번엔 아랫배가 묵직해지는게 아닌가. 화장실을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 거리며 결국 찾은 곳이 주유소 화장실, 용변을 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리듬이 끊어지면서 의욕이 상실되고 에너지도 고갈(枯渴) 되어 갔다.
완주나 하자! 그러나 한번 잃은 의욕은 되돌리기 힘들었다. 몸이 더워져 급수대를 볼 때 마다 물을 온 몸에 붓고 달렸다. Willis Bridge 를 넘어 Bronx에 진입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Madison Bridge를 건너 마침내 5개 보로의 마지막인 Manhattan에 진입했다.
많은 관중을 만나 힘을 받은 것일까. 5Th Ave를 거침없이 달려 182 번째 마라톤을 완주 했다. 아내도 무사히 완주하여 Bag를 찾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흠뻑 젖은 옷을 갈아 입고 회원들을 만나 뒷풀이를 하고 집에 오며 생각에 잠긴다. 역시 마라톤은 끝나 봐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