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전범기
없는 세상을 위해 달리다
위안부기림비부터
UN본부까지 울트라평화마라톤
열흘전부터 일기 예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행사일은 2월 17일 일요일. 뉴욕 일원은 혹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토요일
온다는 눈이 비켜 지나갔지만 일요일 아침부터 강풍이 몰아쳤다.
체감온도가 섭씨 영하 15도에 육박할만큼 살을 에일 듯한 추위다. 준비한 유니폼이 바람을 막아주는 ‘윈터 자켓’이어서
다행이었다.
주최측인 일본전범기 퇴출시민모임(일전퇴모) 대표 백영현님과 팰리세이즈 팍 한인회장 장기봉님이 아침 일찍부터 위안부 기림비
앞에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나와 함께 유세형, 김유남, 김성유, 한만수, 김호성, 유병근, 이경섭, 김형남, 홍효선 등 10명의 울트라 마라토너는
약 50km에 달하는 전 구간을 완주한다. 또한 제시카 권, 최명숙, 이옥석, 한상우 등 4명은 기림비부터 조지워싱턴 다리까지 3마일을
출발할때와 돌아올 때 함께 달리게 된다.
기림비 앞에는 응원차 나온 시민들과 도우미를 자청한 딸과 사위, 그외 취재진, 특히 일본 기자가 이곳까지 와서 취재하는
모습을 보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간단히 출전 의식을 진행했다. 일전퇴모 백영현 대표가 개회를 선포하고 장기봉 한인 회장이 목적과 의의가 담긴 성명서를
낭독(朗讀)했다. 오전 9시. 마침내 출발이다. 팰리세이즈 팍 경찰서 차량들의 호위(護衛)를 받으며 대장정의 여정을 시작했다.
오늘의 마라톤은 보통의 마라톤이 아니다. 우리 가슴엔 일본의 욱일승천기가 나치의 하켄 크로이츠와 똑같은 전범의 상징물임을
고발하는 배너가 달려 있지 않은가.
E Central Blvd 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철각(鐵脚)들의 가뿐 숨결이 가슴에 꽉 차오르는 분노처럼 느껴졌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한처럼 남아 있는 일제 36년의 압박과 설움을 폭발 시키고 돌아오리라 굳게 다짐했다.
조지 워싱턴 다리 앞에서 호위차량과, 4명의 런너들과 작별하고 정예 10명이 힘차게 달렸다.
다리를 건널 때는 날아갈 것같은 강풍 때문에 몸이 강으로 떨어질 것 같았으나 우리 일행은 줄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묵묵히
핍박을 감내한 은근과 끈기의 민족처럼 앞으로 전진했다.
다리 한가운데를 경계로 뉴욕이다. 다리를 건너 178 Sreet를 지났다. Amsterdam Ave부터 145
Street~Adam Clayton Jr Blvd ~ 116 Street~ 5Ave까지 달리면서 미리 준비한 팜플렛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욱일승천기가 다름아닌 욱일전범기라는 사실을 뉴요커들과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알려야 한다.
110 Street부터 시작되는 센트럴 팍을 오른쪽으로 끼고 달렸다. 1857년 개장됐을 무렵 뉴요커들은 풍요로운
자연속에서 자유를 누렸겠지만 일본은 조선을 호시탐탐(虎視耽耽) 노리며 침략의 시기만 엿 보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1910년 치욕(恥辱)의 강제합병이 되어 36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식민지 생활, 민족의 존폐 위기 속에서 수탈과
억압을 당했고, 역사는 왜곡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 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우리의 선구자들이 희생되었는가?
생각할수록 피가 거꾸로 치솟는데 그때의 상징물인 욱일전범기를 미화시키려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다니, 대명천지(大明天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인가.
한민족만이 아니라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전쟁의 희생물이 되었고 그 추악한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버젓이 MoMA같은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자신과 상관없으면 개의치 않는 이기주의적 사고때문일까? 글로벌 시대의 국가관, 민족관을
상실했기때문인가?
세상이 아무리 잘못되어도 침략의 상징물만은 지구상에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달리면서 외치고 또 외친다.
“Rising Sun Flag! No!”
센트럴 팍 입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첫번째 경유지인 MoMA를 향했다. 맨하탄의 복잡한 인도를 피해 차도로도 달렸다.
복잡한 것은 아무런 장애요인이 아니다. 오직 머리에 “Rising Sun Flag, NO” 뿐이었다.
MoMA 입구에는 관람을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각국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Rising Sun Flag, NO” “Hakenkreuz, NO”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일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말했다.
“일본은 왜 과거사를 반성 할 줄 모르느냐?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아시아의 평화 세계의 평화의 길로 함께 가야
한다.”
“일본이 전범기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욱일전범기를 두번 다시 들지 말라!”
“나는 전범기가 내려올 때까지 지구 끝까지라도 달릴 것이다”
소리를 질러 표출하니 속이 좀 후련해지는 듯 했다. 다음 경유지는 파크애버뉴 48 Street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이다.
역시 많은 취재진들에게 둘러 싸였다.
우리의 뜻이 일본정부에 전달되고 일본 국민들에게 바로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유엔 본부로 이동했다
유엔본부앞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함성과 구호를 외치며 전 세계를 향하여 일본전범기의 심각한 현실을 고발했다.
“세계인 여러분!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은 나치의 구부러진 철십자가 이상으로 추악한 전범의 상징물입니다. 일본제국주의의
부활을 꾀하는 무리에 속아서 무심코 일본 전범기를 사용하는 실수를 하면 안됩니다!”
UN본부를 깃점으로 이제 돌아가는 코스다. 딸 승택이와 사위 타미가 갖고 온 따뜻한 커피와 빵으로 허기를 달랬다.
다시 힘을 내어 42 Street로 달려 맨하탄 서쪽 강변으로 해서 북쪽으로 가야 한다.
뉴욕에서 늘 가장 많은 인파들로 붐비는 42 Street를 비집고 요리조리 달려 도착한 부둣가, 뉴저지 쪽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이 몸을 날려버릴 것 같았으나 일본전범기의 흉계를 만천하에 고발한 우리들의 마음은 뿌듯하기만 했다.
두줄로 질서를 지키며 달리던 홍효선님이 심한 강풍에 균형을 잃고 내게로 쓰러져 황급히 두손으로 붙잡았다. 혹한(酷寒)속에
약 25 마일(40km)을 달려 왔으니 체력의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다. 이제부터는 서로 힘을 실어주고 격려하며 달려야 했다.
눈 앞에 보이는 조지 워싱턴 다리를 보며 투혼을 불살랐다. 삭풍에 노출된 피부는 꽁꽁 언듯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떤
불꽃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며 마침내 하고야 마는구나! 하며 용솟음치는 기분이었다.
다리를 건너자 미리 와서 기다리는 제시카권, 최명숙, 이옥석, 한상우 등과 합류했다. 경찰 차량 네 대가 대기하고
있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위안부 기림비가 있는 팰리세이즈 팍으로 향했다. 많은 차량들과 주민들로부터 환호의 박수를 받았고
주변 차량들은 경적(警笛)을 울리며 반겨 주었다
마침내 계획했던 오후 3시, 여섯시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우리는 '일전퇴모' 백영현 대표와 장기봉 팰리세이즈팍 한인회장이
결승테이프를 들고 있는 사이로 감격의 골인을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얼싸안고 등을 두드리며 오늘의 성공적인 울트라 마라톤을 자축했다. 2010년
대륙횡단마라톤을 해냈을 때의 감격에 버금가는 기쁘고 의미있는 레이스였다.
◇ 전범 상징물 퇴출 평화 울트라 마라톤
일시: 2013년 2월 17일, 일요일,
날씨: 맑음, 온도:18 F, 체감온도:5 F, 바람, 29/hpm
시간: 오전 9시~오후:3:00 (6시간)
코스: 위안부 기림비(257 2nd St Palisades Park NJ 07650)~
E Cental Blvd~Palisade Ave~GWB~178 St~Amsterdam Ave~
145 St~ Adam Clayton Jr Blvd ~ 116 Street 5Ave~53 St(현대 미술
박물관)~
Park Ave(뉴욕 일본 대사관)~48 St~ 1 Ave(유엔본부)~
42 St~ Hudson River Greenway~96 St~Riverside Dr~
165 St~Fort Washington Ave~178 St~GWB~ Palisade Ave~
E Cental Blvd~Palisade Blvd~Broad Ave~위안부 기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