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하반기 첫번째 마라톤, 통산126번째 풀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하여 새벽 6시에 용커스(Yonkers)를 향해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 아름다운 강변도로(9A)를 따라 달리며 오늘의 경기 운영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했다.
갑자기 더위가 찾아왔으나 오늘은 가장 좋은 날씨를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런너들에게는 더운 기온이므로 상의를
벗고 뒷덜미를 가리는 사막에서 사용하는 모자를 쓰고 달리기로 결정했다.
일찍 도착하여 출전 준비를 하고 휴식을 취하려는데, 한 여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각국 런너, 한인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분주히 시간을 보고 출발 선상에 섰다.
용커스 마라톤 대회는 미국에서 보스톤 대회 다음으로 오래된 역사가 깊은 대회다. 1907년 Mercury Athletic
Club of Yonkers에 의해 Thanksgiving Day(추수감사절)에 개최, 1917년 11회까지 운영하다 잠시 중단되었으며,
1935년 Chippewa Democratic Club에 의해 다시 속개되었다.
2001년에 9.11테러사건으로 개최하지 못한 것을 빼고는 금년도가 87번째로 아주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대회다.
11월의 추운 날씨가 불편하여 여름이 끝나고 가을 문턱인 9월 3째주 일요일에 거행하게 되었으며, 70~80 년대 마라톤
붐이 일기 전에는 보스턴 대회와 용커스 대회가 미국 마라톤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시에서 대회 운영을 맡다가 지난해부터 NYC Run 이 주관하기 시작했는데 참가선수가 대폭 늘어나는 등 활성화되어 옛
명성을 찾아가고 있다.
나는 이 대회를 2000년 9월17일 첫 출전하여 호기롭게 전반 하프를 1시간 45분에 통과하고, 후반 하프를
2시간56분, 총4시간41분에 완주한 쓰라림과 환희을 맛본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한 대회다.
코스는 용커스 시내를 1바퀴 돌면 하프, 2바퀴 돌면 풀 마라톤이 되는데 언덕이 많아, 위험하고, 견딜수 없이 고통을
준다고 해서 ‘잔인하고’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무시무시한’ 등등 각종 어려운 형용사로 설명되는 주로(走路)로 유명하다.
용커스 시는 웨체스터 카운티에 속하며 뉴욕 시티의 브롱스 보로와 3km 거리에 있고, 맨하탄과 가장 가까운 도시로
2010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19만5,976명이 거주하고 있어 뉴욕시와 버팔로, 로체스터에 이어 4번째로 뉴욕주에서 큰 도시다,
역사를 살펴보면 1645년에 변호사이자 학자, 작가를 겸한 네덜란드의 Adriaen Van der Donck 가 땅을
구입, 식민지화 하였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의 별명이 영어는 ‘Younger Gentleman’, 독일어”는 ‘Jung and Herr’,
그리스어는 ‘Esquire’ 등이었는데 여기서 ‘Yonkers’ 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 용커스 라이브러리(왼쪽)와 독립전쟁 이전 생활용품을 전시하는 Philips Manor Hall
▲ 용커스 라이브러리(왼쪽)와 독립전쟁 이전 생활용품을 전시하는 Philips Manor Hall
그가 Hudson River 근처 Nepperham Greek에 Saw Mill(제분소)를 세워, 지금도 그곳을 Saw
Mill River 라 부른다. 이곳엔 ‘Phillipse Manor Hall’이라는 독립 전쟁 이전 사용하던 생활용품을 전시한 ‘Hudson
River 박물관’과 경마장, ‘Herness Racing(마차 경주장)’ 도박장 등이 있고 수마일 길이의 대로인 센트럴파크웨이(100 번
도로)를 따라 쇼핑센터 등이 줄지어 옛날과 현대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다
마침내 험로(險路)의 여정이 시작됐다. 미국 국가가 시청앞 광장에서 울려 퍼지고 총성이 나면서 런너들은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나는 한사람씩 추월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뒤에서 출발했다,
허드슨 강변을 따라 4,5 마일 정도 갔을 때 1.5 마일의 길고 가파른 언덕이 눈앞에 놓였다, 자세를 바로잡고 천천히
오르며 훈련 때처럼 침착하게 올라 정상을 탈환하고 몸이 낭떠러지지로 떨어질 듯한 내리막을 내려오며 6 마일 지점을 통과했다.
그런데 8 마일쯤 왔을 때 왼쪽 종아리와 무릎, 허벅지에 이상 기류가 흘렸다.
아뿔싸! 훈련중 당한 부상이 완치되었는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었구나! 하고 몸을 추수르고 좀더 속도를 줄여 무사히
완주를 해야겠다고 계획을 바꾸어 달렸다.
10 마일에서 다시 1 마일 정도의 언덕이 도사리고 있었다, 역시 난 코스였다.
산세 지형에 따라 형성된 도시의 도로가 심한 요철을 만들었고, 이것이 마라톤 코스가 되어 런너들에겐 악명이 높고 원성을
하면서도 참가한다, 처음 출전하는 런너는 호기심에, 기록에 실패한 선수는 오기로 재차 출전하며, 고통을 즐기는 런너는 어려운 코스만 찾아 달리기
때문에 이곳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두번째 긴 고개를 넘어 브로드웨이 상가를 지나 12 마일쯤부터는 완만한 내리막길! 이런 길만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약간의 통증을 이기고 하프를 1시간 51분에 통과했으나 이제부터 다시 한바퀴를 부상을 안고 어떻게 달려야 될지….
눈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이 정도 위기는 미 대륙 횡단 때도 있었다, “너의 노하우를 총동원하라” 하고 나에게
명령했다. 봉사자의 응원을 받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다. 자세와 발의 착지(着地)를 교정하고 힘을 오른쪽으로 가해
왼쪽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며 달렸다.
다시 찾아오는 통증을 참아가며 허드슨 강변도로를 따라 도착한 가파르고 험한 산고개를 기어히 정복하고 달려 올라온 길을
힐끗 뒤돌아보고 낭떠러지 같은 언덕을 내려갈 때는 허벅지의 통증이 극을 달했다.
“고통과 통증을 참아라, 너는 이것을 이겨야 한다”라고 나를 채찍질 했다,
Nepperham Ave의 곧게 뻗은 길에는 땡볕으로 아스팔트가 이글이글 타며 열기를 내뿜어 온몸을 열기로 가득 채우는듯
했다. 숨쉬기조차 힘들었으나 목표와 희망이 있기에 고통을 벗 삼아 줄기차게 달려갔다.
드디어 마지막 언덕을 넘으며 이제는 126번째 마라톤을 완주하겠구나! 하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마라톤의 묘미(妙味)는 마지막 1마일! 너무도 길게 느껴지고 결승점 현수막이 아른거리지만 보이지 않아 애태우며
소진(消盡)된 몸을 이끌고 가야하는 최악의 고통이 수반된다. 저 멀리 들리는 함성 소리가 죽음의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는 전투사를 반기는
백성들의 환희의 환송곡처럼 들려왔다.
▲ 60대부에서 나란히 남녀우승을 차지한 최헬렌씨와 함께(왼쪽). 한인남녀가
60대부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부상 속에서 힘겹게 완주하고 메달을 목에 걸고 절룩이며 한손에 태극기, 한손에 성조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해냈노라”
소리치고, 성적을 보았다,
60대 1위! 감사했고 고마웠다, 모두에게.
나의 두 발자국이 이곳 용커스에도 또렸이 새겨져 영원히 한국인의 자취로 간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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