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감기속에서 129번째 마라톤 완주!
난생처음 중도 포기 위기 겪기도
10월 29일 뉴욕 뉴저지 일대를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로 시작된 정전(停電)사태가 무려 열흘 뒤인 11월 7일에야 복구됐다.
그동안 암흑과 추위 속에서 지내다 급기야 감기 몸살이 내 몸에 들어와 나갈 줄 모르고 괴롭혔다.
펜실베이니아 주도 해리스버그(Harrisburg) 마라톤이 다가오면서 대회를 출전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에도 몸살 감기에 걸린 상태에서 달렸다가 크게 고생한 적이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등록을 마쳤고, 천천히 몸을 달래며 완주를 목표로 삼자고 결심하고 대회장소를 향해 출발했다.
해리스버그는 BC 3000년 전부터 ‘Peixtin’ 혹은 ‘Paxtang’ 이라는 미국 원주민이 거주한 델라웨어와 오하이오를 오가는 무역상인들의 중요한 휴식 장소로 애용된 아름답고 포근한 지역이었다.
1608년 유럽인으로는 영국인 John Smith가 최초로 온 기록이 있다. 1719년 John Harris Sr가 정착, 14년후 800 에이커(3.2제곱km)의 땅을 구입했고, 지역명을 그의 아버지 Harrisburg 로 명명했다. 펜실베이니아 수도가 된 것은 1812년.
1850~1920년까지는 철강 산업과 철도 사업으로 번성했으나 그후 1970년까지 위축되는 등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고 관광객 유치를 통해 도시 발전을 위한 각종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마라톤 출발지는 해리스버스 시의 젖줄인 Susquehanna River 가운데 있는 City Island 였다. 이후 시내를 돌고, 서쪽으로 갔다 다시 돌아와 동쪽 주변을 짚어가는 코스다.
출발 신호와 함께 Market Bridge를 건너, 왼쪽으로 꺾어져 Front Street 를 따라 달려갔다. 그런데 0.5 마일 갔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기가 어려워졌다. 잠시 멈추고 계속 달릴 것인가? 망설였다. 완주를 못하면 차라리 지금 중단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128회의 정규 마라톤을 달리면서 중도 포기는 단 한번도 없었다. 입을 벌리지 말고 코로 호흡하면서 속도를 늦추고 오직 완주에 초점을 맞추기로 마음 먹고 다시 출발했다. 시내를 돌아 교외쪽으로 발을 떼었다.
어쩌다 찬 공기가 입을 통해 목을 통과하면 기침이 나왔고, 기침을 하면 기운이 뚝 떨어져 주춤거리게 되었다. 강변으로 가는 트레일 길은 비포장이어서 흙먼지가 많이 일었다.
기침을 하지 않으려고 입을 꼭 다물고 코로 숨을 쉬려니 산소 부족으로 가슴이 아파왔다. 그래도 달리 취할 방법이 없어 속도를 줄이고 달렸다.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오니 7 마일(11.3km).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달려보자. 마음을 굳게 먹고 Walnut Bridge를 건넜다. 이 다리는 철교로 1996년 홍수로 두동강이 났었는데 많은 런너가 뛸 때 출렁거려 깜짝 놀라서 모두 우와~ 하고 소리를 쳤다. 현기증마저 일었다.
왼쪽편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달려가는데 시원한 찬 바람이 느껴졌다. 평상시라면 좋아했겠지만, 두통과 오한의 몸살증세가 있는 오늘은 나를 괴롭히는 야속한 존재였다.
똑같은 상황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삶에도 사람에 따라, 생각에 따라 적용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강변을 지나 주택가를 달릴 때는 주민들이 나와 응원을 해 주었다. 6th Street 부터 시작된 도로는 Industrial Road의 곧게 뻗은 4마일(6.4km)로 연결돼 다소 지루했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시작된 자갈길은 달리기에 불편했다.
18 마일(29km) 부터 20 마일(32km)까지 이어지는 Wildwood Lake Park의 Trail Road는 요철이 심해 에너지 고갈 상태인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끈질긴 사투(死鬪)를 벌이며 탈출한 후에는, 대로가 나왔다. 묵묵히 아무 생각 없이 텅 빈 머리로 앞만 보고 달렸다. 조금 속도를 내려고 했다가 입으로 공기를 들이켜 터져나오는 기침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흘렸다.
23마일(37km)부터는 강변을 따라가면서 “마라톤은 완전한 몸을 갖춰야 달릴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 대륙 횡단을 하는 95일 동안 몸에 아무런 이상 없이 완주 할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 있었던 것 같았다.
25 마일(40.2km) 왔을 때 저 멀리 보이는 섬(City Island)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 왔다. 기어코 완주는 하는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체력이 완전 소진되어 정신이 흐릿해졌지만 발은 무의식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멀리 결승점이 보인다. 흔들거리는 Market Bridge를 넘어 피니시라인을 밟자마자 시계를 보았다.
4시간19분32초! 근래 없었던 최악의 기록이었지만 완주를 한 것으로 만족했다.
세상은 넓고 마라톤코스는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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