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6일 금요일

이란이 마라톤을 안하는 까닭

보스턴마라톤을 통해 본 마라톤 약사
 
마라톤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북동쪽 약 30Km 떨어져 위치한 지역 이름이다. 이곳에서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의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뛰어가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는 뜻에서 1896년에 올림픽에 채택된 육상 경기 종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490년 아테네가 페르시아군이 마라톤에 상륙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스파르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파견하였으며 페이디피데스는 약 200km의 거리를 이틀에 걸쳐 뛰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위급한 상황을 듣고 원군을 파병하는데 동의했으나 스파르타의 전통에 따라 만월(滿月)에 출병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도움없이 몇몇 동맹도시의 도움으로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헤로도토스는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전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마치 전설처럼 퍼져 있는 마라톤의 유래는 후대에 지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마라톤 전투와 관련된 일화로 페이디피데스가 스파르타로 질주하던 중 팬(판)신이 나타나 아테네의 건투를 약속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아테네에서는 횃불 들고 달리기를 해마다 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같은 역사의 아픔(?)에 따라, 마라톤 전투에서 패전한 페르시아의 후예국인 이란은 마라톤을 금기시하고 있다. 올림픽과 아시아 경기대회 등 세계대회에서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선수는 단 1명도 없었으며 자국의 도시인 테헤란에서 열린 197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마라톤이 아예 제외되었다.


▲1896년 아테네올림픽의 마라톤경기 www.en.wikipedia.org
거리

오늘날 공식적으로 채택된 마라톤의 거리는 42.195 km이다. 이 거리는 물론 위에 설명한 전설적인 마라톤의 유래와 전혀 관계가 없다. 이 거리는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에서 최초로 채택된 것이다.

당시 영국 왕실에서 마라톤의 출발과 결승 광경을 편안히 보기 위하여 윈저 성의 동쪽 베란다에서 마라톤이 시작되어 화이트 시티(White city) 운동장에서 끝을 마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종래의 마라톤 거리 40km 235m보다 약 2km가 긴 마라톤 코스가 정해졌으며, 이 새로운 거리는 런던 올림픽 이래로 마라톤의 공식 거리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거리는 풀 코스에서만 사용되며, 하프마라톤인 21.0975km, 10km, 5km 등의 단축 마라톤, 풀 코스보다 더 긴 60km, 100km, 200km 등의 울트라 마라톤도 있다. 최근에는 300km 이상의 서바이벌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보스턴 마라톤의 역사

보스턴 마라톤(Boston Marathon)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에서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 애국자의 날에 열리는 오랜 전통과 전위를 자랑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 마라톤 대회이다. 1896년에 처음 시작된 그리스 아테네 근대 올림픽을 기념하고자 이듬해인 1897년 보스턴선수협회 주최로 첫 대회가 열렸다.

런던 마라톤, 뉴욕 마라톤, 시카코 마라톤, 베흫린 마라톤과 함께 세계 5대 마라톤대회로 불리며 지금까지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두 차례(1918년 22회, 1949년 53회 대회)를 빼고는 매년 열렸다. 매년 2만명 이상이 참가하며 관람객 수만 50만명에 이른다. 1996년의 100회 대회에는 3만8700명이 참가해 세계 최대 국제 마라톤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대회 규모가 너무 비대해지자 1997년, 101회 대회부터 국제 마라톤 대회로는 유일하게 참가자의 자격(대회 직전 18개월 사이 공인 대회에서 완주한 18세 이상자로 일정시간 이내의 기록보유자)과 참가자 수를 15,000명으로 제한했다. 2003년부터 참가자수를 늘려 올해는 2만7000여명이 출전했다. 우승자는 유일하게 올리브 나뭇가지로 만든 월계관이 쓰게 되며 상금은 1880년부터 받기 시작했다.

여자 선수는 참가가 허용되지 않다가 1966년 Roberta Bobbi Gibb, 1967년 Kathrine Switer 가 출전한데 이어 1972년 76회 대회부터는 전면 개방되어 현재는 43% 이상이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www.en.wikipedia.org
코스는 처음에는 보스턴과 미국독립전쟁 첫 교전지역이며 미국 자유의 탄생지라고도 하는 렉싱턴을 왕복하는 25마일이었으나 이후 국제육상경기연맹이 마라톤 코스를 42.195㎞로 정하자 1925년 19회 대회부터는 보스턴 교외 홉킨턴으로부터 보스턴 시내의 보스턴 육상경기 클럽 앞까지의 편도 코스로 변경됐다.


보스턴 대회는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참가한 서윤복이 1947년 51회 대회에서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기록으로 1위를 했고 1950년 54회 때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3위로 골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봉주는 2001년 105회 대회에서 2시간 9분 43초로 우승, 케냐의 대회 11연패를 저지했다. 보스턴 마라톤에서 얻은 한국인의 금메달만 무려 3개가 된다.

안타깝게도 2013년 117회 대회에서는 결승지점 부근에서 경기시작 4시간이 지난 즈음 두 차례의 폭탄 테러가 일어나 3명이 사망하고 260여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달리는 중 체력이 갑자기 뚝!

뉴 오버팩 팍에서
04/26/13, 금요일, 날씨 맑음, 온도: 58 F
거리: 13.6 M, 시간: 2시간

어제 그렇게 힘들었으나 오늘은 좋은 듯하여
늦은 8시30분 뉴 오버팩 팍으로 갔다.
5바퀴 10 마일을 달렸을 때 갑자기 체력이 똑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중단하고 집으로 왔다.
달리기는 체력을 잘 보관 유지하는 요령이 필요
하다. 이제 여름인가? 더워진다

2 M x 5 = 10 M (1시간33분22초)
1.8 M x 왕복 = 3.6 M                      계: 13.6 M

2013년 4월 25일 목요일

감사패 전달식에 참석


일시: 2013년4월25일 오전:11:30분
장소: Palisades Park 시청 회의실
내용:  Palisades Park 시장님께 팰팍 한인회 에서
감사패 전달식을 함으로서 한인 케뮤니티와 관계
을 돋독히 하고자 하여, 나는 2009년 필라 뉴욕
서제필 선양 150마일 달리기, 2010년 미 대륙 횡단,
2013년 2월 일본 전범기 퇴출 달리기 할때 협조를
이끼지 않아 참석 고마움을 전했다.
 
             

몸 달래기!

오버팩 뉴 오버팩 팍 에서
04/25/13, 목요일, 날씨: 맑음, 온도: 47 F
거리: 4.75 M, 시간: 시간: 1시간

어제 달린 피로가  잘 풀리지 않는다.
훈련량이 부족한  탓이다 30 마일 달려본지가
오래 되어 굳어 오는 느낌이다
계속해서 장거리 훈련을 해 보자
오늘은 제시카 권, 곽명숙등과 오버팩 팍으로
뉴오버팩 팍으로 돌아 달렸다.
왠 바람이 이렇게 심하게 부는가?
체감 온도와 실제 온도 차가 심하다

오버팍 팍 1 바퀴= 1.25 M
뉴오버팩 팍1바퀴 = 2 M,
집 왕복 = 1.5 M                   계; 4.75 M

2013년 4월 24일 수요일

25 미일(40키로) 훈련!

허드슨 강변에서
04/24/13, 수요일, 날씨: 맑음, 온도:45~60 F
거리: 25 M, 시간: 4시간

오늘은 보스톤 마라톤이후 처음으로 장거리 훈련
을 하기위해 준비하고 나아갔다.
날씨도 좋고, 몸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5 마일은 홍효선님과 다리고 혼자 달리다, 15
마일이후 10마일은 현철수 박사와 동반주 했다.
30마일 달리려했는데 중도하차하여 매우 아쉽다
일요일 다시 도전해야 겠다

Exit 1 ~ Edgewater = 5회 왕복 x 5 M = 25  M

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용불 용설의 진리!

뉴 오버팩에서
04/23/13, 화용일, 날씨 잔득 흐림, 온도: 41 F
거리: 9.6 M, 시간: 1시간30분

어제는 그렇게 무겁던 몸이 오늘은 많이 좋다
사람의 마음도 감정에 따라 변하듯, 몸도 시시각각
다르다. 만물이 항상 움이고 변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 우리의 몸도 좋게 사용하면 사용 할 수록
좋아자고 튼튼히 지는 듯하다
지난 1년반동안 부상으로 겨우 몸을 이끌고 달려
속도가 많이 줄었다. 이제부터 험한 고통을 한
고비씩 넘기며 다시 몸을 만들어 보자!

2 M x 3 = 6 M (53분37초)
1.8 x 왕복 = 3.6 M                계 9.6 M

2013년 4월 22일 월요일

후회 없는 훈련을 하자!

뉴 오버팩 팍에서
04/22/13, 월요일, 날씨 맑음, 온도: 41 F
 거리: 9.6 M, 시간: 1시간30분

달리기는 달릴 때는 힘들고 고통이 따르지만
끝내면 언제 힘 들었더냐? 내가 언제 뒤었지?
하고, 경기후에는 좀더 잘 달릴걸, 고통그러워도
좀 참았다면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을테데 하고
항상 후회한다.
인생도 지나고 나면 누구나 후회한다.
삶도, 달리기도 좀더 철저히 설계하고 훈련하여
보다 적은 후회를 하도록 하자!

2 M x 3 = 6 M
1.8 M x 왕복 = 3.6 M       계: 9.6 M

2013년 4월 21일 일요일

포코너 마라톤을 대비한 훈련!

허드슨 강변에서
04/21/13, 일요일, 날씨: 맑음, 온도:39 F,
거리: 16 M, 시간: 2시간

어제 Harley 가 왔다, 새벽에 화장실 사용을 끝내
주는라 늦게 허드슨 강변으로 가서, 5 M을 워밍업
으로 Edgewater까지 다녀오고 경찰서로는 최창용님과
함께 달려갔으나 경찰서 밑 Circle에서  도져히 올라
갈수 없다며 뒤돌아 가시고 나는 끝까지 올라 갔다
돌아올때는 혼자서 최선을 다했지만 52분37초가
소요되였다, 앞으로 포코너 마라톤 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 하자

Exit 1 ~ Edgewater ~ Exit 1 ~ 경찰서~ Exit 1= 16 M

2013년 4월 19일 금요일

옛 곳인 오버팩 팍에서!

오버팩 팍 에서
04/19/13, 금요일, 날씨: 흐림, 온도:60 F,
거리: 5 M, 시간: 1시간

날씨 탓인지 달리기 싫고, 몸이 천근 만근?
오랫만에 돌아보니 꽃도 피고, 건물공사는
완공 직전이 였다.
역시 옛 것이 더 정다워 보였고, 고향에 온
기분이였다. 그러나 몸이 풀리지 않아 2바퀴
만 돌고 집으로 향했다.
몸무게는 줄기 시작 130 파운드 이제 부터
몸 무게 줄이기 전쟁은 시작 도;었다.
일요일은 장거리를 달려 보련다.

1.25 x 2 = 2.5  M
1.25 x 왕복 = 2.5 M     계: 5M

2013년 4월 18일 목요일

축제의 마라톤이 아수라장으로!

안타까운 117회 보스턴 마라톤



통산 132번째 출전하는 이번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2002년에 첫 출전하고 미 대륙 횡단 하던 해인 2010년 등 올해까지 11번째의 레이스였다. 2005년과 2008년에는 태극기를 들고 달렸는데 올해 5년만에 태극기를 다시 거머쥐게 됐다.




태극기를 들고 달릴 때 연도의 많은 시민들이 “South Korea”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가끔 정확한 발음으로 “대~한민국”하고 불러 줄 때면 마치 기를 불어 넣어주는 듯 하여 힘이 불끈 솟구쳤다.






태극기를 처음 들고 뛴 마라톤은 2004년 New York City Marathon 이다. 믿거나말거나 같지만 그때만 해도 태극기를 일본 국기로 아는 미국인들이 있었다. 태극기를 보고 “Japan!" 하고 소리치면 뒤돌아서서 “Korea!” 하고 목청껏 정정해주던 기억이 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그 사이 180도 바뀐 상황이 실로 감개무량(感慨無量)이다.


기록을 의식해야 하는 마라톤에서 태극기를 들고 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태극기를 통해 국위를 선양(宣揚)하겠다는 마음과 연도의 시민들과 주위 런너들의 놀라운 반향(反響)이 늘 나를 즐겁게 한다.




보스턴 마라톤은 1897년 시작. 올해로 117회를 맞았다. 한국 선수로는 해방직후인 1947년 서윤복 선수가 첫 우승을 차지했고 1950년도에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1, 2, 3위를 모두 휩쓸었다.


1990년대 들어 10년 동안 계속 아프리카 선수가 우승하다가 2001년에 이봉주 선수가 2시간9분43초로 아프리카 선수들을 제치고 1위로 골인, 한국의 위상을 세워주며 보스턴 시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 대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령별 출전 속도 규정으로 출전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여겨진다


경기일인 15일 월요일에 맞춰 회원들과 함께 전날 컨벤션 센터에 도착, 배번을 찾고 탄수화물로 저녁 식사를 마쳤다. 다음날 달릴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긴장 상태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일어나 출발 장소로 이동했다.




대한민국을 비롯, LA와 조지아 애틀랜타 등 각지에서 온 한국인 런너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면서 출발선상에 섯다. 2만4천여명이라는 많은 인원때문에 10시와 10시20분, 10시40분으로 시차 간격을 두고 뛰게 했다. 나는 맨 뒤인 10시40분에 출발했다.


오른손에 태극기를, 왼손에 카메라를 들고 뛰려다가 너무 불편한듯 하여 카메라를 출발 직전 한 회원에게 건넸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기절초풍할 사건이 터졌으니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던게 아쉬웠다.




이 대회에 첫 출전하는 회원들과 멀고도 긴 대장정을 총성과 동시에 떠났다. 코스는 미 독립전쟁을 촉발시킨 ‘Tea 사건’이후 독립군이 보스턴을 향해 Hopkinton Town 을 출발, 현 Route 135 도로를 따라 진격해 간 Ashland Town Framingham, Natick Twon 을 따라간다.




유명한 Wellesley 의 여자 대학교 앞을 지나면 Half 가 되고, Newton 에 입성하면 Boston College 의 학생들이 Heartbreak 를 힘들게 올라가는 런너들에게 목청이 터져라 응원해 준다. 숨가쁘게 고개를 넘어 Brookline Town 을 지나면 Boston City 의 건물들이 보인다.


보스턴 마라톤은 New England Indipendence Patriot Day 로 4월 둘째주 토요일, 셋째주 일요일, 월요일 3일간 공휴일로 지정 각종 행사가 진행되며 그중 마지막 날 Big Event로 치러진다.




나는 동료들의 ‘페이스 메이커’로 4시간20분에 맞추어 달리는 일을 맡았다. 고사리같은 어린이들이 내미는 손에 하이파이브도 하고 태극기를 보고 “South Korea” 하면 흔들어 답례도 했다. 이따금 강남 스타일의 말춤 모습도 보여주면 모두가 환호하는 함성에 도취(陶醉)되곤 했다.


피니시 라인을 코 앞에 둔 40km 지검의 매트를 밟고 다리의 언덕을 넘어 직선의 도로를 달리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앞서 가던 런너들이 선 채로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돌아 언덕을 넘으면 결승 아취가 있는 대로가 나타나고 환호성 속에 결승 매트를 밟으면 생애 132회 마라톤에 완주에 성공하게 된다.


그런데 런너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앞에는 경찰이 서 있고 통제하니 황당한 일이었다. 주위 동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결승지점에서 2발의 폭탄이 터져 입구를 모두 폐쇄했다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사고냐? 고 물었더니 테러라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청천벽력(靑天霹靂)도 유분수지 테러가 발생하다니... 순수한 스포츠의 제전(祭典)을 불모로 어떤 미치광이들이 테러를 저지른단 말인가. 무자비한 테러범들의 행위에 아연실색할 따름이었다.




입고있던 팬티와 싱글레스 상의, 모자와 태극기만 들고 있던 나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 돼 있었다. 그러나 선 채로 대기하면서 점점 온도는 내려가고 찬 바람이 부는 바람에 오싹하며 추위가 온 몸을 휘감았다.


턱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추워서 고통받다가 주택가에서 사람들이 나와 집에 있는 비닐 쓰레기백을 나누어 주어 그것으로 몸을 감쌌다.


그 상황에서도 모두 침착하게 기다리며 주최측에서 안내하는 길을 따라갔다. 본부석 주변에 맡겨놓은 보관소에서 짐을 찾았다. 저 앞에 아련히 보이는 결승점 아취 주위는 어수선했고 경찰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리저리 널부러진 잔해(殘骸)들과 연기가 자욱하니 피어오르고 있었다. 폭탄 테러가 벌어진게 실감이 났다. 5분 정도만 일찍 뛰었다면 달리는 순간 폭탄이 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나 동료들이 다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다니 참담한 기분이었다.


어둠이 깔리는 보스턴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대절한 15인승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어릴적 겪은 6 25전쟁, 청년 시절에는 월남전에서 전쟁의 참혹한 상황을 경험한 나로서는 오늘의 현상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어떤 스포츠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평화로운 마라톤에 테러가 침투하다니! 우울한 심사때문이었을까. 돌아오는 내내 주변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에필로그>



다음날 대회조직위에서 이메일이 왔다. 마라톤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에게 완주 인증서를 준다는 것이다. 참가자중 약 7천명이 테러 때문에 레이스를 끝내지 못했다.


그러나 5km 단위로 모든 선수들의 기록이 체크됐기 때문에 선수마다 마지막 구간을 통과했을 때의 기록을 근거로 평균 시간을 계산해 공식기록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미국식 합리주의와 출전선수에 대한 깊은 배려가 느껴진다. 모쪼록 보스턴 시민들이 다시 희망을 갖고 내년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의 레이스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