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마라톤을 통해 본 마라톤 약사
마라톤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북동쪽 약 30Km 떨어져 위치한 지역 이름이다. 이곳에서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의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뛰어가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는 뜻에서 1896년에 올림픽에 채택된
육상 경기 종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490년 아테네가 페르시아군이 마라톤에 상륙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스파르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파견하였으며 페이디피데스는 약 200km의 거리를 이틀에 걸쳐 뛰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위급한 상황을 듣고 원군을 파병하는데 동의했으나 스파르타의 전통에 따라 만월(滿月)에 출병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도움없이 몇몇 동맹도시의 도움으로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헤로도토스는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전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마치 전설처럼 퍼져 있는 마라톤의 유래는 후대에 지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마라톤 전투와 관련된 일화로 페이디피데스가 스파르타로 질주하던 중 팬(판)신이 나타나 아테네의 건투를 약속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아테네에서는 횃불 들고 달리기를 해마다 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896년 아테네올림픽의 마라톤경기 www.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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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위급한 상황을 듣고 원군을 파병하는데 동의했으나 스파르타의 전통에 따라 만월(滿月)에 출병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도움없이 몇몇 동맹도시의 도움으로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헤로도토스는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전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마치 전설처럼 퍼져 있는 마라톤의 유래는 후대에 지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마라톤 전투와 관련된 일화로 페이디피데스가 스파르타로 질주하던 중 팬(판)신이 나타나 아테네의 건투를 약속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아테네에서는 횃불 들고 달리기를 해마다 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같은 역사의 아픔(?)에 따라, 마라톤 전투에서 패전한 페르시아의 후예국인 이란은 마라톤을 금기시하고 있다. 올림픽과
아시아 경기대회 등 세계대회에서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선수는 단 1명도 없었으며 자국의 도시인 테헤란에서 열린 197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마라톤이 아예 제외되었다.
▲1896년 아테네올림픽의 마라톤경기 www.en.wikipedia.org
거리
오늘날 공식적으로 채택된 마라톤의 거리는 42.195 km이다. 이 거리는 물론 위에 설명한 전설적인 마라톤의 유래와
전혀 관계가 없다. 이 거리는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에서 최초로 채택된 것이다.
당시 영국 왕실에서 마라톤의 출발과 결승 광경을 편안히 보기 위하여 윈저 성의 동쪽 베란다에서 마라톤이 시작되어 화이트
시티(White city) 운동장에서 끝을 마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종래의 마라톤 거리 40km 235m보다 약 2km가 긴
마라톤 코스가 정해졌으며, 이 새로운 거리는 런던 올림픽 이래로 마라톤의 공식 거리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거리는 풀 코스에서만 사용되며, 하프마라톤인 21.0975km, 10km, 5km 등의 단축 마라톤, 풀
코스보다 더 긴 60km, 100km, 200km 등의 울트라 마라톤도 있다. 최근에는 300km 이상의 서바이벌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보스턴 마라톤의 역사
보스턴 마라톤(Boston Marathon)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에서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 애국자의 날에
열리는 오랜 전통과 전위를 자랑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 마라톤 대회이다. 1896년에 처음 시작된 그리스 아테네 근대 올림픽을 기념하고자
이듬해인 1897년 보스턴선수협회 주최로 첫 대회가 열렸다.
런던 마라톤, 뉴욕 마라톤, 시카코 마라톤, 베흫린 마라톤과 함께 세계 5대 마라톤대회로 불리며 지금까지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두 차례(1918년 22회, 1949년 53회 대회)를 빼고는 매년 열렸다. 매년 2만명 이상이 참가하며 관람객 수만
50만명에 이른다. 1996년의 100회 대회에는 3만8700명이 참가해 세계 최대 국제 마라톤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대회 규모가 너무 비대해지자 1997년, 101회 대회부터 국제 마라톤 대회로는 유일하게 참가자의 자격(대회 직전
18개월 사이 공인 대회에서 완주한 18세 이상자로 일정시간 이내의 기록보유자)과 참가자 수를 15,000명으로 제한했다. 2003년부터
참가자수를 늘려 올해는 2만7000여명이 출전했다. 우승자는 유일하게 올리브 나뭇가지로 만든 월계관이 쓰게 되며 상금은 1880년부터 받기
시작했다.
여자 선수는 참가가 허용되지 않다가 1966년 Roberta Bobbi Gibb, 1967년 Kathrine Switer
가 출전한데 이어 1972년 76회 대회부터는 전면 개방되어 현재는 43% 이상이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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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는 처음에는 보스턴과 미국독립전쟁 첫 교전지역이며 미국 자유의 탄생지라고도 하는 렉싱턴을 왕복하는 25마일이었으나
이후 국제육상경기연맹이 마라톤 코스를 42.195㎞로 정하자 1925년 19회 대회부터는 보스턴 교외 홉킨턴으로부터 보스턴 시내의 보스턴
육상경기 클럽 앞까지의 편도 코스로 변경됐다.
보스턴 대회는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참가한 서윤복이 1947년 51회 대회에서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기록으로 1위를 했고 1950년 54회 때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3위로 골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봉주는 2001년
105회 대회에서 2시간 9분 43초로 우승, 케냐의 대회 11연패를 저지했다. 보스턴 마라톤에서 얻은 한국인의 금메달만 무려 3개가
된다.
안타깝게도 2013년 117회 대회에서는 결승지점 부근에서 경기시작 4시간이 지난 즈음 두 차례의 폭탄 테러가 일어나
3명이 사망하고 260여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