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출전할 때 마다 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마추어인 내게 날씨가 너무 크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01년 보스턴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 7월 San Francisco Marathon 에서 고온다습(高溫 多濕)으로 3시간 56분28초, 9월 Erie Pennsylvania 에서 개최한 Eriesistable 대회는 수영을 할 정도의 화씨 85도(섭씨 30도) 아래서 4시간03분43초로 뒷걸음 쳤으나, 열 번 째 도전한 10월 Corning New York 의 Wineglass Marathon 대회에서 무려 38분을 단축한 3시간35분08초로 관문(關門)을 통과했다.
통산 143회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는 이번에도 열흘 전부터 일기예보(日氣豫報)를 매일 점검했으나 지난번과 달리 불운하게 대회 당일에만 화씨 85도(섭씨 30도)이상을 예고하는게 아닌가.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마라톤의 무엇인가 생각하며 끊임없이 지치지 말고 끝까지 달려보자! 고 단단히 채비하며 한영석님과 집을 떠나 허드슨 강변 도로를 따라 Yonkers 로 갔다.
6시 새벽 어둠인데도 벌써 온도계는 화씨 68도(섭씨 2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많은 런너들이 오늘의 날씨에 대해 말을 하며 걱정들을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정면 대결을 실천하기로 하고, 사막용 모자에 선글라스, 그리고 상의를 벗고, 뒤에서 천천히 출발 후반부를 대비했다.
Yonkers Marathon 은 미국에서 보스톤 마라톤 대회 다음으로 역사가 깊다. 뉴욕 시티 근교의 좋은 여건이건만 출전 인원이 많지 않은 원인은 난코스에 날씨마저 더운 징크스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 대회 출전은 통산 6번째로 새로 건축된 건물과 변화된 모습의 발전에 옛 모습을 시내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코스는 Yonkers Amtrack Station 앞 River St 의 Dock St 에서 출발, Hudson 강변도로 Warburton Ave 를 따라 북쪽으로 향해 달리다 Farragut Ave 의 길고 가파른 ‘마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 Nepperhan Ave 를 만나면 남쪽으로 달리고, 다시 S Broadway 그리고 Ludow St 에서 서쪽으로 돌아 Riverdale Ave 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13.1 마일, 이것을 2바퀴 돌면 Full Marathon 이 된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모두 목적지를 향해 힘찬 발을 내디뎠다. 왼쪽에는 허드슨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은 내가 매일 훈련하는 강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울창한 나무 숲이 보였다. 오른쪽에는 주택가로 주민들이 목청이 터져라 응원해 주었다.
4 마일이 지나자 1,5 마일의 길고도 가파른 언덕을 꾸준히 생각에 잠긴 채 넘었다. 잘 알려진대로 마라톤은 그리스 아테네 북동쪽 20km 떨어진 지역이름으로 이곳에서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의 전투가 있었고 이 전투의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피이디피데스’ 전령이 뛰어서 알렸다. 그를 기리기 위해 1896년 올림픽에서 육상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초대 우승은 그리스의 루이스 스피리돈이었다.
당시 올림픽의 12개 육상 종목에서 6개를 석권한 미국 올림픽팀 회원 존 그레이엄이 사업가 허버트 홀턴의 도움으로 보스턴에 마라톤 대회를 열게 됐다. 올림픽 다음해인 1897년이었다. 24,5 마일(39.4km) 거리를 15명이 출전, 10명이 완주한 결과 뉴욕 출신의 존 맥더오프가 2시간55분10초로 우승했다.
10년후인 1907년 Mercury Athletic Club of Yonkers 에 의해 Thanksgiving Day(추수감사절)에 개최, 1917년 11회까지 운영하다 잠시 중단되었으며, 1935년 Chippewa Democratic Club 에 의해 다시 속개되었다. 2001년에 9.11테러사건으로 불발한 것을 빼면 올해가 89번째가 된다.
6.2 마일(10km) 지점을 지나면서 Nepperhan Ave, Broadway, Riverdale Ave 의 남은 거리는 땡볕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전반부는 달릴만했다.
문제는 후반부였다. 온도가 상승하고 체력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 예상돼 좀더 신중을 기하여 달렸다.
하프를 1시간 57분에 통과하고 한 바퀴를 더 돌기 위해 첫 발을 내디딜 때 몸이 더 가벼워 지는 듯 했다. 속도를 내보자 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17 마일(27 km)지점의 ‘마의 언덕’부터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신중한 자세로 언덕을 넘은 후 다시 힘을 내어 달렸다.
첫 마라톤 출전 때 첫 바퀴를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잘 달리고 2번째 바퀴 때 급수대마다 쓰러져 허둥대던 것이 머리속에 뚜렸이 남아 긴장을 풀지 않고 두 발에 힘을 실어 주었다.
드디어 143회 마라톤의 결승 매트를 밟으며 시계를 보니 4시간11분01초!
비록 기록은 좋지 않았지만 무더위에 지칠 줄 모르고 달려온 것은 힘의 안배(按配)로 생각하고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