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팍과 뉴욕 5개 보로를 누비다
마라톤과 울트라 마라톤 등 장거리만 출전하다 오랜만에 하프 마라톤(13.1 M)에 출전했다. 오래전에 등록을 했는데 마침
그게 시즌 첫 공식 달리기가 되었다. 뉴욕의 5개 보로인 맨해튼과 브루클린, 퀸즈, 브롱스, 스태튼아일랜드를 돌아오기 때문에
‘5보로(borough) 시리즈’로 불리는 대회다.
요즈음 날씨가 무척 변덕스럽더니 대회일인 27일은 화씨 20도(섭씨-6.6도)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바람때문에 체감
온도는 화씨 5도(섭씨 -15도)를 가리켰다.
완전무장(完全武裝)을 하고 있다가 가방 보관소 앞에서 상의와 하의를 벗고 타이즈 하의, 그리고 긴 티셔스 위에 윈터
자켓, 벙어리 장갑, 면 모자에 마스크까지 했다.
그러나 추위는 삽시간에 온 몸을 휩싸기 시작했다. 계속 움추리고 있다가 워밍업도 하지 못하고 출발 선상으로 갔다.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발이 시려워 오기 시작했다. 발을 동동거리며 빨리 출발 신호가 울리기만 학수고대(鶴首苦待)했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 라더니 짧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뚜~”, 출발 나팔이 불고 약간 뒤에 섰던지라 앞의 런너들을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발이 어찌나 시려운지 발이 땅에
닿는지 떠있는지 감각을 느끼지 못한 채 무작정 앞의 런너만 보고 달렸다.
5,000여명의 런너들이 폭이 좁은 도로를 달리다보니 서로 부딛치고 추월(追越)하기도 쉽지 않아 달리기 리듬이 자주 깨져
불편했다.
2년만에 달려보는 센트럴 팍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겨울의 앙상한 나무와 엊그제 내린 눈이 잔디밭에 쌓여 있다. 이
추위에도 애견가들은 애완견과 공놀이를 하거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웨스트 67가에서 남쪽으로 출발 59가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이스트쪽 언덕을 숨을 몰아쉬며 넘어 갔다.
마라톤이나 울트라를 달릴 때는 마음이 느긋하지만 하프 마라톤 이하 경기에 출전 할 때는 빨리 달리려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긴장하게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곤 한다. 초반 스피드로 에너지를 많이 소모시켜, 후반에 속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오늘은 발이 너무 시려워 발에 열을 내려는 생각뿐이었다. 가자! 내리막 길 103 가 근처에서 두발 모두를 의족(義足)에
의지한채 열심히 달리는 런너에게 “Good Job” 하는 격려의 응원을 해주고 110가부터 시작되는 ‘아리랑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을 정복한 4마일(6.5km)쯤 왔을 때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고, 다시 시작되는 언덕을 오른 5마일(8km)지점에
도착하자 비로소 발도 시렵지 않았다.
센트럴 팍은 뉴욕에 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유명한 공원이다. 843 에이커 넓이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고,
훌륭한 도시공원으로 1857년에 개장됐다. 잔디밭은 1858년 조성하기 시작, 1873년 완공 되었다. 현재의 공원은 1962년 디자이너 겸
작가인 Frederic Law Olmsted 와 조경가 Calvert Vaux 에 의해 만들어 졌다.
구성은 자연 그 차체를 보전하는 구역과 인공 호수, 도보 트랙, 올레길, 수영장, 아이스 스케이트장, 동물원, 음악
정원, 야생 보호구역, 자연숲이 106 에이커에 달한다.
이밖에 야외 원형 극장과 벨베데레 성, 스웨덴 코티지 꼭두각시 극장, 오랜 역사의 회전목마(回轉木馬), 7개의 넓은
잔디밭이 있고 6마일(10km) 드라이브 도로는 런닝과 조깅, 자전거, 보드 스케이트, 인라인 보더 등을 위한 천국의 도로다. 맨해튼의 허파이자
뉴요커들의 휴식 공간인 이곳에 관광객만 1년에 무려 3,500만명이 찾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6마일(1바퀴)을 돌았을 때 48분40초! 기대치에는 못 미치지만 그간 고통을 주었던 부상에서 점점 완쾌되어가는듯 하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추위에 근육이 잘 움직여 주지 않은 탓에 10 마일(16km)쯤 왔을 때 왼쪽 다리에 약간의 통증이 왔다. 그러나
심하지 않아 힘껏 하나, 둘, 구령을 하고 달려 통증을 잊으며 달렸다.
많은 런너들과 경쟁하며 달리는 기분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다. 더더욱 젊은 청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릴 때 입에서 내 뿜는 하얀 입김은 정력(精力)과 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시계를 보니 1시간51분59초다. 연령그룹 4위! 재기의 불빛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극한의 한파도 달림이들의 뜨거운 열정을 이길 수는 없었다.